미국이 지닌 예외적인 능력, 이번에는“무능”

위기가 닥칠 때마다, 미국인들은 성조기 아래 하나로 뭉쳐 지도자들을 강력히 지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코로나-19 감염증에 늑장대처 했을 뿐 아니라 일관성 없는 단속적 접근법으로 비난을 자초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곡선을 그린 것도 아마 이런 연유에서일 터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사실을 직시하고, 불편한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은 경제부국들 가운데 최악의 코로나-19 감염지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의 무능 탓이다. 이것이 미국 예외주의(exceptionalism)의 새로운 얼굴이다.

미국은 중국을 제치고 코로나-19 최다 감염건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질병의 1차 방어선은 확진검사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미국은 낭패를 겪었다: 허점투성이 진단 키트로 너무 늦게 검사를 시작했고, 지금도 초기대응 실패에 따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발언은 잔인한 거짓말이었다. 대다수 선진국들에 비해 미국에서는 검사를 받기가 훨씬 어렵다. 한국보다 더 많은 확진검사를 실시했다는 트럼프의 주장 역시 헛소리다. 한국의 인구가 미국의 1/6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은 억지 셈법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25일 기준 한국은 인구 1인당 미국보다 다섯 배나 많은 검사를 했다. 한국은 그렇다 치자. 정부의 무능이 수시로 도마 위에 오르는 이탈리아에서조차 인구 1인당 검사 건수는 미국에 비해 네 배나 많다.

인공호흡기에서 마스크, 장갑, 방호복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모자라는 것투성이다. 새로운 보급품을 적재적소에 신속히 공급하는 국가비상 시스템도 전무하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중증환자들이 사용할 병상 4만개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뉴욕 주가 보유한 전체 병상은 3,000개에 불과하다. 이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팬데믹이 선포된 이후 3주가 지난 지금, 뉴욕의 의료진은 1회용 마스크를 반복착용하거나 직접 면마스크를 만들어 쓴다며 마스크를 기증해달라고 호소했다. 에드 웡은 애틀랜틱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사공이 없는 상황에서 확실한 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헛발질을 해대는 무능과 무기력의 결정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내가 만난 의료전문가들은 미국정부의 코로나-19 대응법이 그들이 우려했던 것 이상으로 부실하다는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도널드 트럼프는 애초부터 서투른 지도자였다”며 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낭패를 겪은 부실대응의 뒷면에는 이보다 더 큰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은 정부예산을 난도질했고, 독립적인 기구들을 정치화했으며 집요하게 지방통제를 강화했고 공무원들과 관료들을 함부로 비하하고 깎아내렸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제한적이고 효율적인 정부를 선호했다. 정치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페더럴리스트 70’의 저자 알렉산더 해밀턴은 ”이유야 어찌됐건 법 집행이 잘못된 정부는 실제로 나쁜 정부“라고 썼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만들어낸 현대 연방관료제는 놀라울 만큼 날렵하고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정부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기아상태에 빠진 관료제는 점차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 1950년대의 경우 전체 고용에서 연방정부의 민간인 직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5%를 웃돌았다. 그때에 비해 인구는 두 배, (인플레를 감안한) 국내총생산(GDP)은 무려 일곱 배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수치는 2% 아래로 떨어졌다.

연방기관들은 산더미 같은 각종 규정과 정치색을 띄운 행정명령 및 규칙에 치인 채 인력부족과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 관료들에게는 권한이나 재량권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이번 사태를 통해 큰 문제점으로 드러난 연방식품의약국(FDA)의 거추장스런 규정은 수백 건의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한 폴 라이트는 존 F. 케네디 시절, 내각은 ‘17겹’의 위계조직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할 당시 이 수치는 71개로 늘어난 상태였다고 밝혔다. 물론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가 연방정부를 관료적 비효율성의 상징체로 만드는데 손을 보탰다.

이 같은 역기능의 대부분은 자체 기구들을 거느린 주정부와 지방정부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 전국차원의 통일된 코로나-19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구되지만 현실적으로 공중보건 분야의 실질적 권한이 각각의 독립성을 앞세우는 2,684개의 주와 시 정부 기관들로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사이의 의견조율은 고사하고 논의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미국의 연방제를 민주적 지방분권주의의 성공작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갈가리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진 짜깁기 권한으로는 국경과 지역 경계를 모르는 전염병을 막을 수 없다. 지방의 허술한 방어선 중 어느 한 곳만 뚫려도 바이러스 감염은 다른 지역으로 무섭게 번져나간다. 플로리다 해변에서 일어난 일은 그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미국이 중국의 독재체제를 그대로 따라갈 수야 없지 않느냐는 주장은 안이하기 짝이 없는 책임회피에 불과하다. 팬데믹에 잘 대처한 정부들 가운데는 한국, 타이완, 독일 등과 같은 민주국가들도 포함되어 있다. 선별검사와 역학조사, 격리 등 싱가포르와 홍콩이 동원한 최상의 대응책은 대부분 억압적이 아니라 깔끔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원이 풍부하고, 대응력이 강한 효율적인 정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국경을 넘나들며 빛의 속도로 번지는 숱한 문제에 대처해야 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한 국가를 진정 예외적으로 만드는 것은 “원활한 법 집행이 이루어지는 정부”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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