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민 부적격자’인가

연방대법원이 또 트럼프의 반 이민정책에 손을 들어 주었다. 무슬림 입국금지령 합헌 판결, 국경장벽 건설에 국방부 예산 전용 허용, 대부분 중남미 이주자들의 미국 망명신청 금지 등 이민제한 시도에 힘을 실어준 대법원이 이번엔 이민심사에서 ‘부자 테스트’로 ‘이민 부적격자’를 걸러내려는 새 규정 시행에 청신호를 켜주었다.

27일 대법원의 결정으로 하급심의 가처분 명령에 의해 중단되었던 이른바 ‘퍼블릭 차지’ 규정의 즉각 시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공적부조’로 번역되는 ‘public charge’는 공공 복지혜택을 받는 ‘생활보호 대상자’를 뜻하며 1882년부터 이민법 조항으로 포함되어, 영주권과 비자 발급 심사의 한 요소로 적용되어 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8월 발표한 후 10월부터 시행하려다 중단 당했던 공적부조 규정은 그 정의를 대폭 확대시킨 것이다. 그동안 이 용어는 소득의 절반 이상을 정부지원에 의존하는 사람들로 간주되어왔고, 지속적인 현금 수혜나 양로병원 장기입원 정도를 적용했기 때문에 ‘공적부조’를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아 영주권을 거부당하는 경우는 1%미만에 불과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새 규정이 시행되면 메디케이드(메디캘), 푸드 스탬프, 주거보조 등 공공혜택을 3년 중 합산해 12개월 이상 받은 적이 있거나, 앞으로 받을 것으로 생각되는 이민자들도 거부당할 수 있다. 심사 요소는 나이, 재산, 고용전력, 교육수준, 영어능력, 건강, 크레딧 점수, 학자금 대출 빚 그리고 가구소득이 연방빈곤선의 250% 이상인가 등 20개로 나와 있지만 사실상 결정은 이민심사관에 달려있다고 관계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민심사관에게 폭넓은 재량권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추측에 의해 신청자 중 누가 앞으로 ‘납세자에게 부담을 줄 웰페어 수혜자’가 될 것인지를 걸러내는 것이다.

불합리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 힘들었던 정착기에 한두 가지 정부혜택을 일시적으로 받았다 해서 부적격자로 몰아가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지만, 정부지원을 받은 적 없는 신청자에 대해 웰페어 수혜 가능성을 예측해 영주권이나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것은 맨손으로 시작한 자수성가가 미덕인 ‘이민의 나라’에선 더더욱 어불성설이다.

새 규정이 얼마나 많은 이민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지난해 이주정책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5년간 영주권을 받은 약 550만 명 중 69%가 새 규정에 명시된 발급거부 요소를 한 가지 이상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급심의 중단명령으로 잠시 진정되었던 이민자들의 불안과 혼란이 대법원의 결정으로 다시 확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한 젊은 부부의 경우를 전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미 시민권자 남편은 중미 출신 이민자로 간호학을 전공한 아내의 영주권을 신청 중이다. 평생소득 잠재력은 높지만 현재 소득이 낮은 이들은 새 규정 하에서 영주권 발급을 거부당할까 우려하고 있다. 약 20만 커플이 배우자의 영주권 신청자격 미달 위험에 처해있다고 포브스도 보도했다.

‘납세자에게 짐이 될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해서’ 라는 새 규정이 유럽과 캐나다 등 선진국 출신 이민자들에게 유리하고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일부 아시아 국가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들에게 불리할 것은 확실하다.

‘백악관의 반 이민 브레인’ 스티븐 밀러가 집착해 왔다는 새 규정은 처음부터 이민커뮤니티를 재구성해 이민의 얼굴을 바꾸고 합법이민을 대폭 축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유럽출신 이민자 선호는 계속 미 이민역사의 한 부분이었다. 1965년 개정이민법에서 인종 쿼터제가 폐지되고 가족쿼터로 대체된 것도 미국 내 가족들과 합류하기 원하는 더 많은 유럽인들을 환영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역사가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유럽의 삶의 질 향상과 테크놀로지 발달, 동남아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 종료 등의 요소들이 합쳐져 계획과는 다른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뉴욕법대 무자파 취시티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유럽인들의 미국 이민에 대한 흥미는 줄어들고 대신 인도의 학생들, 필리핀의 간호사들, 홍콩의 기업인들이라는 새 이민들, 이들이 정착한 후 초청한 가족들과 라틴계 이민들이 대폭 늘어났다. 1960년대 85%의 유럽 출신과 15%의 다른 곳 출신으로 이루어졌던 ‘이민의 얼굴’은 현재 그 반대가 되었고 밀러와 트럼프는 시계를 되돌려 다시 바꾸고 싶은 것이다.

드리머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 다카(DACA)폐지와 마찬가지로 공적부조 새 규정도 의회의 입법 없이 대통령의 행정명령만으로 ‘미국의 이민을 재정의 하려는’ 반 이민정책 시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대법원 결정은 새 규정 자체가 아닌 하급심 가처분 명령의 적법성에 관한 것이다. 새 규정 내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으며 아직 진행 중인 ‘공적부조’ 위헌소송의 최종 판결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법원 승소를 시사한다는 우려는 이미 제기 되었다.

강경보수로 정착한 대법원은 더 이상 이민자가 기댈 곳은 못되는 듯 보인다. 투표 외에는 계속될 반 이민정책을 막을 길이 없다는 뜻이며 이민커뮤니티가 투표율 100%를 다짐해야 하는 이유다. 금년 선거에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는 이민의 생존이 달려있다.

<한국일보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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