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금지는 미국 안보를 위협, 공포가 과학·안보를 압도하면 모두가 지고 만다”
로켓 공학의 선구자이자 칼테크 대학의 유명한 제트 추진 연구소 초대 소장이었던 첸쉐썬은 1950년대에 미국에서 추방당했다.
이후 그는 중국에 돌아가 중국 탄도 미사일과 우주 발사체 프로그램을 지휘하면서 중국 로켓 공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7개 이슬람 국가 국민에 대해 미국 여행 및 이민 금지 조치를 실시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미국 헌법의 국교 설립 금지 조항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국교 설립 금지 조항은 정부가 특정 종교에 차별이나 혜택을 주는 것을 금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조치로 인해 오도가도 못하게 된 사람들이 당하는 부당한 처우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일례로 둘 다 휠체어를 타고 온 88세의 남성과 83세 먹은 그의 아내는 현재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서 발이 묶여 있는데다가 변호사도 만나보지 못하고 꼭 필요한 의약품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터지자 정치인들은 국가 안보를 그 이유로 내세웠다.
이번의 행정 명령에서는 9·11 테러 공격을 3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테러 공격을 막기 위해 이러한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자들은 설령 이런 행정 명령이 2001년 이전에 실행되었다 하더라도 9·11 테러 공격은 물론 그 이후 벌어진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을 전혀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왜냐하면 그 테러 공격을 벌인 사람들 중에는 이번에 미국 입국 금지 조치를 당한 7개국 국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자들은 이번의 행정 명령은 ISIS의 선전전에 악용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안보’를 강조한 이 행정 명령에는 사람들이 잘 따져보지 않은 또 다른 측면도 존재한다.
바로 현재 미국 대학 내에 있는 외국인 과학도 및 공학도 그리고 외국인 과학자와 공학자들에게 미칠 타격이다.
이들 외국인들은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 기업들의 창업을 돕기도 하기에(스티브 잡스의 아버지는 시리아인이었다.) 이들을 잃으면 당장 미국 경제부터 손실을 입는다.
또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국가 안보 역시 위험해진다.
예전에도 미국은 안보를 구실로 이민 정책을 변경했다.
그 때 미국은 최고의 외국인 과학 인재를 잃었을 뿐 아니라 현재 미국을 겨누고 있는 외국 핵 미사일 기지의 초석을 깔아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첸쉐썬은 1911년 중국 태생이다.
그는 MIT에서 항공공학을 배우러 1935년 미국으로 유학했다.
그는 천재였고 당대의 가장 화려한 항공공학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첸쉐썬은 미국의 전쟁 수행을 도왔다.
그는 미국 정부의 과학 자문 위원회에서 근무하면서 미 육군의 탄도 미사일 유도 기술 개발은 물론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하탄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종전 당시 그는 미군의 중령 계급이었으며 독일의 V-2 로켓 시설과 베르너 폰 브라운 등 나치 과학자들에 대한 조사 임무에도 참여했다.
그의 노력은 미국 ICBM 및 달 탐사 로켓 개발의 초석이 되었다.
첸쉐썬은 유익 우주기 제안서를 작성하기도 했는데 이는 훗날 우주 왕복선의 밑바탕이 된다.
그런 그가 1949년, 칼테크 대학의 유명한 제트추진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임명된 것은 당연했다.
같은 해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창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조셉 맥카시 같은 정치인들의 선동으로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자 혐오증이 창궐했다.
미국 내의 공산주의자들을 모두 사냥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각 정부 기관에 소속 직원들의 충성심을 검증하라는 행정 명령이 내려졌다.
이 빈틈 많은 행정 명령으로 인해 여러 사람들이 애매한 이유로 기소되었다.
첸쉐썬은 그 때로부터 13년 전에 어떤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FBI는 그 집회를 파사데나 공산당의 집회라고 여기고 있었다.
FBI는 첸쉐썬의 미국 시민권 신청을 거부했다.
그는 비밀 취급 인가도 박탈당하고 가택 연금을 당했다.
수년 동안이나 미국 항공공학의 발전에 공헌했는데도 말이다.
예전에도 미국은 안보를 구실로 이민 정책을 변경했다.
그 때 미국은 최고의 외국인 과학 인재를 잃었을 뿐 아니라 현재 미국을 겨누고 있는 외국 핵 미사일 기지의 초석을 깔아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칼테크 대학은 1979년에 첸쉐썬에게 동문상을 시상하면서 “첸쉐썬이 공산당과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는 나온 바 없다.
첸쉐썬 본인 뿐 아니라 학계, 정부, 산업계에 있는 그의 친구들도 그와 공산당 간의 연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은 진실을 압도했다.
미국의 안보 증진에 이렇게 크게 공헌했고 미래를 위한 귀중한 자산을 제공했음에도 첸쉐썬은 1955년 중국으로 추방당하고 말았다.
당시 미 해군 장관이던 댄 킴벌은 이러한 조치에 크게 분노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한 일 중 가장 바보같은 짓이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전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를 쫓아버렸다.”
중국에서는 첸쉐썬을 영웅으로 대접했다.
중국 국가 원수 모택동은 첸쉐썬의 역량을 이용하면 중국은 핵, 미사일, 우주개발 능력을 보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첸쉐썬은 중국과학원에서 근무하면서 북경 이공 대학의 창설을 도왔다.
그로부터 수십년 간 첸쉐썬은 중국 로켓 공학의 아버지로 알려졌다.
그가 연구한 프로그램들 중에는 현재 미국과 그 우방국들을 조준하고 있는 중국군의 둥펑 계열 전략 탄도 미사일, 중국 핵무장 프로그램,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과 우주비행사를 발사한 장정 로켓 등이 있다.
첸쉐썬의 영향은 이렇게 컸기에 그의 모교 칼테크 대학은 그를 가리켜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이자 공학자로 부르고 있다.
공상과학 작가 아더 C. 클라크 역시 자신이 쓴 소설 ‘2010: 오디세이 투’에 나오는 우주선에 첸쉐썬의 이름을 붙여 그를 기념하고 있다.
과거 냉전기에 있었던 이 이야기는 오늘날의 문제에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물론 미국 내 연구와 학업을 금지당한 모든 과학자들이 천쉐썬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들을 쓸데없이 내친다면 분명 미국의 과학과 안보는 먼 미래에 다가올 또 다른 좋은 기회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만은 확실하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로켓 공학의 선구자이자 칼테크 대학의 유명한 제트 추진 연구소 초대 소장이었던 첸쉐썬(錢學森).
<그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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