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이길 수 있을까

정치 우파로 통일된 공화당에 비해 민주당은 급진 리버럴에서 중도, 재정적 보수까지 이념 스펙트럼이 넓다. 트럼프시대에 들어서 점점 백인 일색으로 치닫는 공화당과는 대조적으로 인종적으로도 훨씬 다양하다. 그래서 언제나 크고 작은 내분이 끊이지 않는 빅 텐트 정당, 민주당이 요즘 전례 없는 ‘단합’을 과시하고 있다.

팬데믹의 와중에서 17일 개막한 민주당의 화상 전당대회는 색색의 풍선도, 수천명의 환호성과 박수갈채도 사라진 채 시작부터 얼마쯤 어색하고 얼마쯤 썰렁해 예년의 축제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단합의 열기만은 뜨거웠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계파들로 구성된 민주당 연합이 ‘도널드 트럼프 패배’라는 절대적 명제 하에 결집한 것이다. 북동부의 민주적 사회주의자에서 중서부의 공화당 보수주의자까지,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이념, 모든 성향, 모든 피부 빛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차이를 잠정적으로 덮어둔 채 트럼프 재선 저지를 최우선과제로 손을 잡았다.

‘단합하는 미국’을 주제로 한 전당대회의 첫날, 미셸 오바마는 왜 트럼프를 패배시키는 과제가 절대적인가를 명확하고 강력하게, 직설적으로 하나하나 짚어냈다.

트럼프를 미국에 맞지 않는 ‘잘못된 대통령’으로 규정한 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나 감당하지 못했다…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라고 무능함을 지적했고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변화를 못 이루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이 혼돈을 끝내기 원한다면 자신의 목숨이 달린 것처럼 바이든에게 투표하라”고 촉구했다.

급진 리버럴의 아이콘으로 2016년 민주당 분열의 중심에 있었던 버니 샌더스도 민주당 단합의 기수로 발 벗고 나섰다. 17만명의 미국인이 사망한 팬데믹의 와중에서 ‘골프를 친 트럼프’를 로마가 불 탈 때 바이올린을 켠 폭군 네로에 비유한 그는 ‘나의 친구들, 경선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호소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있다. 우리의 경제도 위기에 처해있다. 우리의 지구도 위기에 처해있다. 우리는 단합해 트럼프를 물리치고 조 바이든과 카말라 해리스를 차기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선출해야 한다. 친구들이여. 그 실패의 대가는 상상조차 못할 만큼 클 것이다”

타협을 모르는 강성의 민주적 사회주의자 샌더스가 이렇게도 말했다 : “이 나라를 수많은 우리의 영웅들이 싸우고 목숨 바친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나는 진보파와 중도파, 그리고 보수파와도 함께 일할 것이다”

자신의 지지자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한 4년 전 전당대회에서의 미지근했던 힐러리 클린턴 지지와는 완연히 달랐다. 트럼프 패배라는 공동목표 때문이기도 하고 당시 샌더스에게 양보할 필요를 안 느꼈던 힐러리와는 달리 바이든의 적극적인 진보진영 포용 때문이기도 하다.

존 케이식 전 오하이오 주지사로부터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에 이르기까지 상당수 공화당 인사들도 가세한 ‘반 트럼프’ 단합은 폭넓게 다져지고 있다. 그러나 당장은 수면 아래 잠겨있는 사분오열 내분 또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생생한 현실이다.

금년 예비선거에서 자당 현역의원들을 꺾고 승리를 거듭한 젊은 급진 좌파들에겐 승세가 체감되는 지금이 ‘대담해질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민주당 기성 주류는 중도적 메시지로 경합지역에서 승리해 백악관과 함께 상원 탈환을 겨냥한다. 경합주의 민주의원들도 민주당 후보는 그 지역 유권자들에게 “사회주의자가 아니다”란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균열의 기미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반 트럼프 공화당 케이식 주지사와 민주당 젊은 진보의 상징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 하원의원의 설전이 그중 하나다. 당 이탈을 망설이는 공화당 내 ‘침묵하는 바이든 지지자들’에게 어필하기위해 바이든의 중도성향을 강조하던 케이식이 한 인터뷰에서 “AOC가 민주당을 대변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자 AOC가 “누가 민주당을 대변하는지는 공화당원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즉각 받아 친 것이다.

샌더스 진보파의 정책이 대폭 반영된 정강 채택 표결에선 젊은 진보의원들이 충분히 진보적이 아니라며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고, 2020년 선거에서 처음으로 최대 비백인 표밭으로 자리매김한 라티노 커뮤니티에선 전당대회의 라티노 연사가 너무 적다는 불만이 제기되었다.

지금 꾹꾹 누르고 있는 대립과 불만은 후에 격렬한 당내 충돌로 터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백악관 탈환 후의 문제고, 눈앞의 급선무는 대선 승리다. 바이든의 현재 경합주 지지율 리드를 유지하면서 단합만 이어간다면 민주당의 승률은 상당히 희망적이다.

“승리가 최우선”이라는 전략적 제휴는 아직 단단해 보인다. ‘반 트럼프’라는 접착제의 성능이 강력해서이기도 하고, 실망한 샌더스 지지층의 투표 포기가 대선 패배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던 4년 전의 교훈이 아직 뼈아프게 남아있어서이기도 하다.

투표일까지는 이제 75일 남았다. 우편투표와 조기투표는 가을로 접어들면서 곧 시작될 것이다. 다양해서 아슬아슬한 민주당 연합은 그때까지 단합을 무사히 지켜갈 수 있을까. 민주당은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해 이민의 나라 ‘미국의 영혼’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

글/한국일보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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