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신청한 시민권

때로는 가슴 벅찬 감동이, 때론 말 못할 슬픔과 절망, 고단함이 우리의 삶에는 있다. 특히 낯설고 물 선 이국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결이 다른 스토리들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내장돼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속, 이제는 잔잔한 강물처럼 침잠됐을 워싱턴 지역 한인들의 초기 이민생활의 애환과 남다른 사연을 들어본다.

88올림픽을 뒤로 하고 이민을 와서 한국에서의 삶보다 이제는 미국에서의 인생이 더 길어졌다. 1988년 7월 25일 스무살의 나이에 단돈 200달러와 옷가방 2개를 들고 시민권자 비자초청으로 혈혈단신 미국에 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시민권자와 결혼하면 2년 뒤에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었다.

이민 생활이라는 것 자체가 현지 적응하기 위해 문화와 언어 모든 것에 새로 직면하기 때문에 생업과 현실위에 거쳐야하는 커다란 관문이다. 그래서 집에서 실행한 것은 미국방송을 보고 듣고, 미국신문을 읽어보고, 옆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랑 친구도 만들고 했지만 전화기를 들으면 갑자기 귀머거리가 되는 상황이 한동안 이어졌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처럼 나도 무조건 일을 먼저 시작했다. 가게 점원, 식당 웨이트리스, 매장 매니저, 동네 신문기자, 부동산, 융자, 미용사를 거쳐 지금은 보험회사에서 열심히 일한다.

벌써 5년이 지나고, 시민권을 신청했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 인터뷰를 한다는 편지가 날아왔다. 그런데 그 날짜가 일하는 날이었다. 그러니까 약 27년 전이다. 그리고 그날 이민국 인터뷰 때문에 그날 일을 못하게 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그것을 외면했다.

지금은 이메일, 온라인 웹사이트 등 여러 방면으로 날짜를 조정할 수 있지만 당시는 전화연결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특히 이민국은 더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참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나중에 다시 하면 되지 지나쳤다. ‘다음에, 다음에’로 미루다보니 어느새 32년을 맞았다. 올해 2월에 시민권을 신청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지나온 날들이 정신없이 지난 것처럼 앞으로의 세월도 유수같이 흘러갈 것이다. 아직도 나는 이민생활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민생활은 나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 같이 가는 것으로 느끼고 싶다.

글/박경 (VA 센터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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