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 선 우리의 일상

갑자기 한 주 만에 우리의 일상이 멈추어 서버렸다. 빠르게 진행되는 ‘아메리카 셧팅 다운’을 목격하는 것은 두렵고 기이한 느낌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금요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는 놀라운 속도로 우리가 알아온 세상을 닫아 버렸다.

대학에서 유치원까지 아이들의 학교가 문을 닫았고, 월스트릿에서 신문사까지 부모들의 직장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남가주 디즈니랜드도 닫았고,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의 불도 꺼졌다. 극장과 도서관, 애플스토어와 메이시즈 백화점도 문을 닫았다. 프로스포츠 경기장도 닫았고 피트니스센터도 닫혔다.

술집도 닫혔고 식당에서의 외식도 닫혔다. 북가주 10개 카운티 800만 주민들에겐 장보기 등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집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자택 대피령’이, 뉴저지엔 야간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오하이오와 일부지역 대선 경선도 연기되었다.

가능한 한 아무데도 가지 않고 가능한 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서로 간 6피트 간격을 유지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란 생소한 개념이 단숨에 새로운 일상으로 정착하면서 불안도 깊어지고 있다. 닫힌 문들은 언제 열릴 것인가. 사라져버린 우리의 일상은 언제 되찾게 될 것인가…

최선의 시나리오는 ‘몇 주의 폭설사태’와 유사해지는 상황이라고 USA투데이는 비유한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급증해도 미국의 의료제도가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정리되면서 상당한 불편을 겪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어느 정도의 정상적 일상이 되돌아온다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의료전문가들과 정부 당국자들은 빨라도 몇 주 아닌 몇 달 단위로 생각하라고 경고한다. 자녀들은 새 학기까지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극장에서 식당까지 닫힌 문들이 열리지 않으면서 폭락을 거듭하는 주식시장만이 아니라 동네경제가 눈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까 겁난다. 낙관하고 싶은 대통령도 7~8월까진 코로나 위기가 가라앉기 힘들 것으로 시인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줄어들까, 그 절박한 기대엔 증거가 없다고 잘라 말한 전문가들은 그러나“우리가 운이 좋다면 백신이 내년 가을쯤엔 가능할 것”이라고 희망의 여지는 남겨놓았다.

18일 오후 현재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는 7,324명으로, 사망자는 115명으로 늘어났다. 영국 전염병연구진의 최근 보고서는 정부와 개인의 노력 없이는 미국의 사망자가 22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대통령은 최고의 대처를 장담하지만 미디어들은 산소호흡기에서 병실 베드, 마스크에 이르기까지 장비와 인력 부족 등 현 의료시스템의 취약성을 지적하며 보다 강력한 연방대책을 촉구한다.

몇 주내 최악의 상황이 엄습한다는 전망만 계속될 뿐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보통사람들에겐 특히 그렇다. 검사를 받아야 하나, 언제 어떻게 받는 것인가. 자가 격리는 얼마나 아플 때 해야 하나… 아니, 그보다 우리는 어느 정도 걱정해야 하는 가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여론의 뭇매를 맞는 사재기를 하면서도 실제로 얼마나 많은 변소휴지가 필요한지도 잘 알지 못한다.

휴교령과 영업중단, 자택격리가 당국의 책임이고,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전문가의 사명이라면 개인의 의무는 바이러스 확산 완화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20초 손 씻기, 팔꿈치로 가리고 기침하기, 아프면 집에 머물기 정도다. 이중 한가지만으로는, 일부 소수의 준수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대다수가 이 수칙의 대다수를 거의 언제나 지켜야 도움이 된다.

전 세계에 걸쳐 수천만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미국의 대표적인 대응 실패로 역사에 기록된 1918년 스페인독감 재앙의 배경엔 당시 부정직한 워싱턴 리더십의 결핍과 함께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했던 주민들의 무책임도 한 몫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게 불확실해 집단 불안과 집단 공포에 빠진 상황에서 일상(日常)이 비상(非常)으로 바뀌어버린 지금,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의존하며 서로를 훨씬 더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립된 채 온종일 함께 지내며 서로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 가족만이 아니다.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타인,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타인들도 마찬가지다.

국가봉쇄 상황에서 각자 집에 갇힌 이탈리아인들이 하나 둘 아파트 창문을 열고 함께 노래하는 베란다의 합창은 아름답다. 서로의 용기를 북돋아주면서 ‘불안의 순간’에 발견하는 ‘기쁨의 순간’이다.

오리건 주 80대 노부부의 절박한 장보기도 감동적이었다. 수퍼마켓 주차장을 걸어가는 20대 여성을 누군가가 차안에서 소리쳐 불렀다. 노부부가 마켓에 들어가기가 너무 두렵다고 울먹이며 장보기를 부탁했다. 부탁할 적절한 사람을 찾느라 45분간이나 기다렸다는 그들은 100달러 지폐와 쇼핑리스트를 내밀었다. 그 마켓에도 손 세정제와 변소휴지는 없었다.

그러나 딱 2개 남은 세정제를 집었던 사람이 하나를 양보했다. 도와줄 가족이 없다는 노부부가 떠난 뒤에야 또 부탁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를 주지 못한 걸 아쉬워한 20대 여성이 트위터에 올린 그날의 풍경은 1,100만명의 마음에 가닿았다. 어두운 시대를 위로하는 하나의 ‘작은 불빛’이었다.

지난주와 이번 주는 너무 다르다. 다음 주는 또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모른다. 자신의 최선을 다한 후엔 불안 속에서 ‘기쁨의 순간’을 발견하며, 위로의 ‘작은 불빛’을 밝히며, 조금씩 평온을 되찾는 노력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일보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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