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들의 용기와 감사

1621년 늦가을에 시작된 미국의 첫 추수감사절은 이민들의 축제였다. 한해 전 긴 항해 끝에 도착한 신대륙에서 혹독한 추위와 질병, 식량부족과 싸워야했던 청교도들에게 옥수수 재배법 등 생존의 지혜를 나눠준 것은 원주민 인디언이었다. 그 절망의 겨울을 이겨낸 청교도들은 이듬해 가을 수확의 기쁨과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인디언들을 초대해 사흘간의 축제를 벌였다.

종교박해를 피해 고국인 영국을 떠난 난민이었고, 가족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새 땅을 찾은 이민이었던 초기 개척민들은 ‘필그림스(Pilgrims)’로 불린다. 필그림이란 단어는 성지(聖地)를 찾아 떠난 순례자란 뜻이다.

필그림스에게 아메리카는 ‘성지’였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후 모든 난민과 이민은 ‘성지 아메리카’를 찾아온 필그림들이다. 기근과 나치를 피해온 아일랜드인들과 유대인들, 내전과 테러에서 도망쳐 온 시리아인들, 가난과 갱 폭력에 쫓겨 온 중남미인들,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찾아온 한국인들도.

새 땅에서 새 삶을 시작한 모든 필그림들은 땀 흘려 노력해 정착의 역경을 이겨냈고, 개척민들이 경작의 첫 수확으로 감사의 식탁을 마련했듯이 제각기의 방식으로 감사를 표시하며 미국 발전에 힘을 보태왔다. 커뮤니티 봉사와 불우이웃 돕기에 앞장서기도 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세금을 내고, 자영업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또 일부는 공직에 진출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다. 지난주 탄핵청문회에서 용기 있는 증언으로 진실을 밝힌 이민자 증인들도 그랬다.

한 사람은 영국의 가난한 탄광촌에서 왔고, 또 한 사람은 압제가 심했던 옛 소련치하에서 왔으며 다른 한 사람은 공산 소련과 나치 독일을 피해 캐나다로 이주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국가안보 고위직 관리로서의 전문지식과 확고한 소신 답변에 더해, 이들의 스토리는 미국이 왜 ‘이민의 나라’인가를 웅변적으로 증명했다. 증언 시작 전 모두발언을 통해 가족의 이민사를 들려주며 새로운 조국 미국에 대한 감사와 신뢰를 표하고 흔들림 없는 충성과 헌신을 자부한 이들의 증언은, 청문회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7월말까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러시아 담당관으로 일했던 피오나 힐은 자신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된 미국인’이라고 표현하며 고국인 영국에선 결코 얻지 못했을 기회를 미국이 주었다고 말했다. 석탄광부의 딸로 가난하게 자란 그는 영국에선 전문직 성공을 저지했을 자신의 노동계층 영어 액센트가 “미국에선 한 번도 날 좌절시킨 적이 없었다”며 기회의 나라 미국에 대한 확신과 감사를 표했다.

성인이 된 후 도미해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2012년 시민권을 받은 그는 미국의 이민역사가 “미국의 진수”라고 지적하면서, 극소수를 제외한 미국인 모두가 과거 어느 때인가 미국으로 온 이민 가족사를 가졌고, 바로 “그것이 미국의 위대한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보다 앞선 알레산더 빈드먼 육군중령의 ‘이민’ 증언은 한층 강력했다. 3살 때 소련치하 우크라이나에서 이민와서 하버드를 졸업하고, 퍼플하트 훈장을 받은 이라크전 참전용사로 현재 NSC 유럽담당관인 그는 “만일 내가 러시아에서 대통령 관련 증언에 나섰다면 목숨을 걸어야 했을 것”이라며 소련의 압제와 대비되는 ‘자유사회’ 미국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표했다.

영어 한 마디 모르던 40대 후반에 세 아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미국이주를 단행하고 온갖 막일로 아들들을 명문대에 보내 전문직으로 성공시킨 아버지를 향해 그는 말했다. “아버지, 내가 지금 미 연방의사당에서 우리의 선출된 전문가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40년 전 당신이 옳은 결정을 내렸다는 증거입니다. 걱정 마세요, 진실을 말해도 전 괜찮을 테니까요”

그게 무슨 뜻이냐고 한 의원이 물었다. 그는 “의원님, 이곳이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내 형제들이 섬기며 지키는 나라이고, 이곳에선 올바른 것이 중요하니까요”라고 대답했다. 빈드먼네 삼형제는 피난처와 기회를 준 미국에 대한 감사와 헌신으로 모두 군인이 되었다.

미국에 대한 감사를 가장 명확하게 진술한 증인은 3살 때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온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 마리 요바노비치였다. “내 서비스는 이 나라가 내 가족과 내게 준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돌아가신 내 부모님은 자유사회에서 성년이 되는 행운을 갖지 못했지요. 소련과 나치 독일에서 탈출했던 그들과 나의 이민사는 미국에 대한 깊은 감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갖게 했습니다.”

이들은 이민의 경험이 자신들을 공직으로 이끌었다면서 미 국가안보 수호에 대한 강한 열망과 신념을 피력했다. 그것은 이민자들이 국가안보의 위협이라는 트럼프의 공격에 대한 파워풀한 반증이었다. 트럼프가 어떤 반이민 정책으로 압박하든 미국은 이민자들의 땀과 용기와 감사로 세워지고 계속 번영하는 ‘이민의 나라’라는 사실을 증명해 준 것이다.

추수감사절을 한 주 앞두고 나온 이들의 증언이, 이민 폄하를 일삼는 트럼프 시대에 시달리며 불안해진 이민자들에게 자긍심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해피 땡스기빙!

<한국일보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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