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머’ 운명 가를 연방대법원

‘트럼프 탄핵’을 둘러 싼 팽팽한 정치대결의 와중에서 10월의 첫 월요일인 7일 연방대법원의 새 회기가 시작되었다. 탄핵 회오리 이전부터 금년 회기는 지난해보다 훨씬 뜨거울 것으로 예상되어왔다. ‘섹스’, 이민, 총기, 낙태, 종교에서 대통령의 권한까지 향후 반세기 미국의 정치환경을 바꿀 수 있는 논란 이슈들로 가득 차 있어서다.

대선 투표일을 4개월여 앞둔 내년 6월 말 쏟아져 나올 주요 판결 중 가장 즉각적이고 실제적 영향을 미칠 케이스가, 이민사회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한 ‘드리머 대 트럼프’다.

어릴 때 입국한 불체청년들, ‘드리머’의 추방을 유예한 오바마의 행정명령 다카(DACA)를 트럼프가 폐지하는 것은 정당한가에 대한 최종 결정이다. 백악관은 다카 자체가 ‘불법’이라고 주장하지만 2017년 트럼프의 폐지결정 이후 잇단 소송에 의해 연방항소법원에선 폐지중단 판결이 내려진 상태다.

다카는 연방의회의 거듭된 이민개혁 입법 실패 후 ‘미국이 유일한 모국’인 드리머 보호를 위해 발동된 행정명령으로 오바마는 이민법 집행에서 범법자를 우선 추방하고 드리머들을 유예시키는 추방대상 선별결정에 대통령 재량권을 사용한 것이라고 밝혔었다.

오바마의 행정명령 자체는 합법적이므로 ‘불법’이라는 주장을 근거로 폐지될 수 없다고 판정한 항소법원은 그러나 대통령들이 전임 행정부의 정책을 바꾸는 재량권을 갖고 있음은 인정했다. 다카가 트럼프의 행정명령으로 폐지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뉴욕타임스도 최근 사설에서 “만약 트럼프가 다카는 현명한 정책이 아니어서 폐지한다고 밝혔다면 법적근거가 더 탄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드리머들의 삶을 파괴했다는 책임이 두려운 그는 다카가 불법적 행정권 행사라고 주장하면서 대법원으로 떠넘겼다”고 지적했다.

11월12일 심리할 다카 케이스는 대법관들의 이념노선에 따라 5대4 판결이 예상되는 대표적 논란 이슈에 속한다. 이민사회가 기대하는 것은 지난 회기 트럼프 행정부의 센서스 시민권 질문 추가를 불허한 진보 승리의 판결에서처럼 보수파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진보파 합류다.

당시 로버츠는 시민권 질문 추가 자체를 위법으로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투표권 시행을 돕기 위해서”라는 행정부의 질문 추가 이유를 ‘거짓’이라고 질책했다. 그러나 2018년엔 무슬림 입국금지령을 국가안보에 대한 대통령의 정당한 권한으로 인정하며 트럼프의 손을 들어 주었다.

미국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핫이슈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근로자들의 권리다.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해고당한 종업원들의 소송 3건을 병합한 대법원의 심리는 이미 개정 둘째 날인 8일 열띤 공방으로 펼쳐졌다.

쟁점은 1964년 제정된 민권법 중 ‘성(sex)에 근거한 고용차별 금지’ 조항의 ‘섹스’에 성별만이 아닌 성적 성향과 성 정체성도 포함되는가의 여부다.

성소수자들이 제기한 고용차별 소송에서 연방항소법원들은 종업원의 성적 성향과 성 정체성을 이유로 해고시키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판결했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지원을 받는 고용주들은 민권법 제정 당시의 연방의회가 그 같은 보호까지 입법화시킨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8일 심리에서 ‘성차별’ 타당성에 진지한 관심을 보인 유일한 보수파 대법관은 트럼프가 지명한 닐 고서치였다. 그러나 고서치도 이 결정이 법원의 영역인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22개주는 이들에 대한 고용차별을 주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나머지 주의 성소수자들은 대법원 판결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동성애자 권리보호에 적극적이었던 중도보수 대법관 앤소니 케네디가 사라진 현 대법원에서의 전망은 밝지 않은 편이다.

그밖에 10년만에 다시 다루게 될 수정헌법 2조 총기소유권과 보수운동의 최대 타겟이 되어온 ‘낙태 합법화 판결 번복’의 길을 다지는 낙태권 제한을 비롯해 줄줄이 늘어선 핫이슈들에 더해 트럼프와 민주당 하원의 탄핵 대결에까지 개입하게 된다면 원하든 원치 않든 대법원은 정쟁의 한복판에 던져지고 로버츠는 그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재정관련 자료와 증언에 대한 민주당 하원의 요구는 이미 하급심을 거쳐 대법원을 향하고 있는 중인데 8일 백악관이 탄핵조사 협조 거부까지 선언했으니 법정투쟁은 더욱 확대될 것이며 하원이 트럼프를 탄핵할 경우 로버츠는 상원의 ‘탄핵재판’도 주재해야 한다.

“2020년 대법원 기상상태는 5등급 정치 허리케인”이라고 예보한 공익 법률연구소 헌법책임센터의 리즈 와이드라 회장도 태풍 약화는 로버츠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트럼프가 지명한 고서치와 브렛 캐버노, 두 대법관이 본격 정착한 현 대법원에 대한 보수진영의 기대는 크다. 그러나 주요이슈에서 기대만큼의 5대4 보수판결이 쏟아질지는 불확실하다. 월스트릿저널은 ‘철저하게 보수적인 법관’ 로버츠의 대법원 보수화 속도조절을 이번 회기의 궁극적 관전포인트로 꼽는다 : 천천히 점증적 변화를 꾀할 것인지, 다수의 확실한 파워를 과시하며 보수 비전 실현의 기회를 잡을 것인지…

다카 판결에서 로버츠는 시민권 질문 판결 때처럼 스윙 보트가 될 것인지, 입국금지령 판결처럼 보수의 파워를 과시할 것인지…7,000여명 한인 젊은이들을 포함한 70여만 드리머들의 운명도 결국 로버츠의 판단에 달려있다.

<한국일보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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