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하원과 트럼프

민주당이 하원 탈환에 성공했다. 기대했던 ‘푸른 파도’는 밀려오지 않았으나 워싱턴 권력구조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기엔 크게 부족하지 않은 승리다.

6일 밤 민주당의 하원 승리를 맨 처음 선언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험난한 향후 2년을 경고한 것은 트럼프가 가장 애청하는 폭스뉴스였다. CNN보다 1시간 반이나 앞서 밤 9시31분, 트럼프가 가장 원치 않았던 선거결과를 보도한 폭스는 어떤 위로도 공화당 하원 패배의 타격을 완화시켜주지 못할 것이라며 트럼프 통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주당의 하원 승리는 워싱턴의 ‘공화당 천하’ 종료와 함께 트럼프에 대한 본격적 견제의 시작을 의미한다. 기록적으로 여성이 늘어나고, 인종적으로 다양해지고, 더 젊어져 한층 과감해진 정치세대가 포진한 새로운 하원이다. ‘푸른 파도’ 대신 ‘무지개 파도’가 밀려왔다고 CNN의 정치 해설가는 비유했다.

입법부의 견제와는 거리가 먼 공화당 의회의 ‘굴종’과 트럼프의 ‘폭주’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민주당의 무력한 날들은 이제 끝났다. 트럼프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다각도의 의회조사가 전개되고, 민주당의 협조조차 구하지 않던 보수 어젠다의 입법화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다.

우선 나타날 결과는 러시아스캔들에서부터 택스리턴, 재정비리, 반이민 정책, 각료들의 비윤리적 행위에 이르기까지 봇물 이룰 의회조사의 시작이다. 소환권을 최대한 행사, 끊임없는 관계문서 제출과 청문회 증언을 요구하며 트럼프 백악관을 악몽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자발적 ‘개점휴업’ 상태였던 공화당 하원시절과는 달리 ‘철저하고 공정한’ 조사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강력한 견제를 천명한 정부개혁 및 감독위원회의 경우 이미 64건의 소환장을 준비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새 의회에선 민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트럼프와 공화당 상원은 단 하나의 법안도 입법화 시킬 수 없을 것이다. 오바마케어 폐지, 대규모 감세, 복지혜택 대폭 삭감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트럼프의 ‘연방의회 무임승차’는 이제 끝나고, 민주당과 서로 양보해가며 타협하거나 사생결단의 전투를 벌여야 하는 새로운 정치환경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민주당 하원 승리가 포함된 선거결과가 나온 후 트럼프의 첫 트윗 반응은 “오늘 밤 굉장한 성공”이었다. 그 말도 사실이다. 공화당 상원은 의석을 늘리며 주도권을 지켜냈고, 트럼프가 집중 지원한 후보들 상당수가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공화당의 상원 수성은 트럼프 집권 첫 2년의 업적인 감세와 규제완화가 번복될 위험이 없으며, 사법부의 보수화도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월스트릿저널은 분석했다. 게다가 새 상원은 더욱 친 트럼프 성향이 될 것이다. 반 트럼프 중진들이 퇴장한 자리에 트럼프에 기대어 승리한 새 의원들이 입성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공화당 장악력이 한층 강화된 셈이다.

상원에선 패했지만 8년 만에 하원 주도권을 손에 쥐고, 민주당 주지사도 7명이나 늘어났으니 6일 밤은 민주당에겐 2년 전 힐러리 클린턴 패배의 기억을 지울만한 ‘좋은 밤’이었다. 그러나 승리에 취해 들떠 있을 여유가 아직 민주당에겐 없다. 절치부심 끝에 얻어낸 기회가 트럼프의 악몽이 되기 전에 민주당의 ‘지뢰밭’이 될 수도 있어서다.

새로운 적이 생기면 투지가 강해지는 트럼프의 반격에 말려들면서 권한 남용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 트럼프 탄핵 추진이 가장 경계해야할 사안으로 지적된다. (로버트 뮬러 특검의 러시아스캔들 수사보고서에서 유죄 입증이 나온다면 이야기가 달라 질 수 있지만 공화당 상원이 트럼프를 계속 지지하는 한 탄핵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반 트럼프 정서에 불타는 민주당에게 요구되는 것이 이길 수 있는, 가치 있는 싸움만을 택하는 신중한 판단이다.

예측불허의 대통령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알 수 없다. 2020년 대선을 겨냥한 지지층 결집을 위해 극단적 캠페인을 계속할 수도 있고 업적 기록을 위해 초당적 타협을 시도할 수도 있다. ‘승리’를 최대 가치로 강조하는 트럼프는 입법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면 공화당이 반대하더라도 민주당과 손잡을지 모른다. 그렇게 드리머 구제나 처방약 값 인하를 실현시킬 수 있다면 민주당에게도 다행스런 일이 될 것이다.

트럼프 반대에만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기엔 민주당의 갈 길이 너무 급하다. 모든 선거의 끝은 다음 선거의 시작이고 트럼프의 재선 캠페인은 이미 시작되었는데 민주당엔 아직 뚜렷한 선두주자도 없다. 2020년 대선까지 민주당의 2년은 하원의 제 기능을 회복시키고 통치능력을 입증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금년 하원 승리를 안겨준 표밭의 메시지부터 정확히 읽어야 한다. 반 트럼프 정서가 절대적 요인이었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싫어서 뿐 아니라 민주당이 좋아서 지지하는 표밭 확대를 원한다면, 민주당의 최우선과제는 정치다운 정치의 비전 제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일보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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