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좌충우돌 1년, 그런데 지지율은 오바마 수준

[예측불허로 세계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2017 트럼프의 순간들]

마크롱 만나 7초 악수 기싸움, 프랑스 영부인에게 “몸매 좋아”
독일과 EU의 관계도 모르고 “협상하자”나서 메르켈 어리둥절
독재자들의 환대에 좋아했지만 막상 외교적인 실익은 못얻어
미국 백인층의 마음 잡아서 지지율은 계속 상승해 46%… 오바마의 첫해 47%에 육박

지난 5월 25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장소인 브뤼셀의 12억달러(약 1조2810억원)짜리 신축 본부 건물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들어섰다. 얼굴엔 이미 ‘분노’가 있었다. 자신 앞에 서서 연설을 듣는 회원국 정상들에게 트럼프는 직설적으로 나토 분담금 확대를 요구했다. 그러고는 “이거 얼마 들었는지는 묻지 않겠소. 아름답군요”라고 비꼬았다. 그는 나중에 주위에 “온통 유리창이네. 폭탄 한 방이면 다 날아가겠다”고 말했다.

아, EU와 협상하면 유럽 모두랑 같이 하는 거였어요? - 3월 17일 백악관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독일과의 무역 재협상을 요구하며. 사진은 7월 7일 G20 함부르크 정상회의 장면.
아, EU와 협상하면 유럽 모두랑 같이 하는 거였어요? – 3월 17일 백악관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독일과의 무역 재협상을 요구하며. 사진은 7월 7일 G20 함부르크 정상회의 장면. 

지난 3월 백악관에서 열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 트럼프는 “악수해 달라”는 취재진 요청도 못 들은 척 무시했고, 메르켈에게 독일과의 무역협정 재협상을 요구했다. 메르켈이 “독일뿐 아니라 나머지 EU 27개국과도 재협상할 수 있으며, 그게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 하는 일”이라고 부드럽게 답했다. 유럽연합(EU)의 의미도 모르고 질문한 것을 메르켈이 에둘러 답한 것이다. 메르켈의 답변을 듣고서야 트럼프는 “아, 그게 모든 나라랑 한 번에 재협상되는 거요? 굉장하군요”라고 답했다. 미 행정부 관리들은 트럼프의 ‘무식’에 창피스러워했다.

오, 힘 좀 쓰네! - 5월 25일 나토 정상회의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마주 잡은 손을 서로 놓지 않으며.
오, 힘 좀 쓰네! – 5월 25일 나토 정상회의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마주 잡은 손을 서로 놓지 않으며. 

트럼프 취임 첫해를 보내면서 미국과 전후(戰後) 70년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동맹국들은 기존의 미 외교정책과 단절한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허’ 발언과 정책에 크게 당혹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8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들과 130여차례 통화했다고 하지만, 각국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파악하느라 여전히 바쁘다”며, 동맹국들이 지난 1년간 대해야 했던 변덕스럽고 괴팍한 트럼프의 모습을 소개했다.

몸매가 아주 좋으시네요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13일 프랑스 파리 군사박물관 앵발리드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여사의 손을 잡는 모습. 트럼프 대통령은 브리지트 여사에게 “몸매가 아주 좋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몸매가 아주 좋으시네요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13일 프랑스 파리 군사박물관 앵발리드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여사의 손을 잡는 모습. 트럼프 대통령은 브리지트 여사에게 “몸매가 아주 좋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는 손가락 관절이 튀어나오게 7초간 악수하며 ‘기 싸움’을 벌인 데 이어 그의 부인 브리지트 여사에게 한 말도 구설에 올랐다. 국빈 방문해서 처음 본 브리지트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몸매가 정말 좋다”고 말했던 것.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좋은 의도였다 하더라도 브리지트가 과연 이 말을 좋게 받아들였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트럼프는 또 지난 7월 한 인터뷰에선 독일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일본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의 ‘형편없는’ 영어 실력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아키에 여사가 “영어를 못한다”며 “헬로(hello) 같은 것도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아키에 여사는 능숙하지는 않아도 영어로 연설을 하기도 한다.

내 얼굴이 호텔에… 고마워 사우디 - 5월 19일 사우디아라비아 방문했을때 리야드의 호텔 전면에 투사된 5층 높이 크기의 트럼프 얼굴.
내 얼굴이 호텔에… 고마워 사우디 – 5월 19일 사우디아라비아 방문했을때 리야드의 호텔 전면에 투사된 5층 높이 크기의 트럼프 얼굴. 

트럼프는 독재국 지도자들과는 오히려 죽이 맞았다. 자신을 극진히 환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얻는 것은 별로 없었다. 지난 5월 트럼프 방문 때 사우디는 수도 리야드의 호텔 전면에 트럼프 이미지를 투사(投射)하기까지 했다. 극진한 환대에 트럼프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전폭 지지했다. 그러나 이후 무함마드 왕세자는 정적(政敵)들 숙청에 나섰다.

11월 트럼프의 방중(訪中) 때 시진핑 주석은 자금성에서 식사와 경극 관람을 하는 ‘황제 의전(儀典)’을 펼쳤다. 트럼프는 귀국하는 전용기에서 “여태껏 해외 정상들 방문에서 이런 환대는 없었다고 한다”고 좋아했다고 한다. 이런 ‘환대’에도 중국의 대북 압력 수위는 여전히 부족하고, 대중(對中) 무역협상도 전혀 진전이 없다.

자금성에서 황제 접대는 내가 처음이라고! - 11월 8일,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으로부터 ‘황제 의전’을 받은 뒤.
자금성에서 황제 접대는 내가 처음이라고! – 11월 8일,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으로부터 ‘황제 의전’을 받은 뒤. 

부시 행정부에서 USTR 대표를 지낸 로버트 졸릭은 “각국은 트럼프의 자기애(narcissism)를 보고, 그가 제대로 압력을 행사할 수 없게 그의 자아를 맞춰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NYT는 동맹국 정상들 사이에선 트럼프의 위협적인 언사에도 ‘트럼프는 크게는 짖는데, 실제 무는 것은 약하다’는 희망 섞인 평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란과의 기존 핵 합의를 비난하면서도 폐기하지 않고, 대선 공약과는 반대로 아프간에 미군 수천명을 추가 파병한 것을 그 예로 든다.

언론들의 ‘트럼프 1년’ 혹평에도 불구하고 28일 발표된 라스무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처음으로 46%를 찍었다. 인기 최고였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임기 첫해 같은 날 조사에선 47%였다. 그만큼 트럼프 텃밭인 개신교 복음주의 세력, 골수 백인층의 지지율은 확고하다. 트럼프는 ‘46% 지지율’을 푸른색으로 돋보이게 하며 ‘함께 미국을 위대하게 만듭시다’는 트윗을 올렸다.

<조선일보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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