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숙청’ 꿈꾸는 배넌의 ‘전쟁’

스티브 배넌의 ‘전쟁’이 승리를 거듭하고 있다. 공화당 기득권층을 겨냥, 살생부까지 공개한 아웃사이더들의 반란이다.

트럼프 백악관 입성의 일등 공신이며 극단적 민족주의 ‘아메리카 퍼스트’의 기수로 지난여름 권력투쟁에서 밀려 쫓겨난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배넌은 최근, 테드 크루즈 한명을 제외한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 전원을 낙선시키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공개하며 기득권층을 향한 ‘전쟁의 계절’을 선포했다.

이틀 전 워싱턴을 발칵 뒤집어 놓은 대표적 트럼프 반대자 제프 플레이크 상원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배넌 진영의 세 번째 승전보다.

9월말 앨라배마 주 연방상원 보궐선거 공화당 경선에서 기득권층 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른 배넌 지지 후보 로이 무어의 승리가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한때 트럼프의 든든한 우군이었다가 샬러츠빌 사태에 대한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비판하면서 사이가 나빠진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의 정계 은퇴 발표였다.

트럼프와 배넌의 관계에 대해 지난 봄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내용이 흥미롭다 :

“도널드 트럼프의 참모 겸 조련사가 되기 전 브레이트바트의 창립자 스티브 배넌은 자신의 백인 민족주의·반이민 정책을 추진시킬 수 있는 대선 후보를 물색했었다. 그때 착안한 인물이 당시 앨라배마 연방 상원의원 (대표적 반이민 인사) 제프 세션스 현 법무장관이었다…세션스가 고사하자 다시 찾기 시작한 배넌의 눈에 들어온 적임자가 트럼프였다…당시 배넌은 기득권층과는 전혀 다른 전략을 제시했다. ‘무역은 공화당 정책 우선순위 100번째다, 우리가 1순위로 만들자. 10번째인 이민은 2순위로 올려놓자’ 미국 우선, 반이민 캠페인이 공화당의 백악관 탈환에 필요한 백인 근로계층 유권자를 동원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그의 전략은 적중했고 트럼프는 백악관에 입성했으나 기득권층의 무능과 반대로 트럼프 어젠다들이 전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배넌의 주장이다. 이들을 낙선시키고 친 트럼프의원들로 물갈이하여 ‘아메리카 퍼스트’의 트럼피즘을 실현시키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배넌의 ‘전쟁’은 그 어느 내부 반란과도 다른, 아직 본 적이 없는 ‘세력’을 예고한다고 ABC뉴스는 진단한다. 배넌의 파워는 백악관에 있을 때보다 훨씬 강력해지고 있다. 지지부진한 워싱턴 정치에 좌절하고 분노한 보수운동가들과 기부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조직과 돈을 확보한데다 브레이트바트의 경영인으로 복직하여 미디어까지 갖추었으며 전국을 누비는 강연을 통해 극단적 포퓰리즘과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있다.

지난 주말 캘리포니아의 강연에서도 그는 트럼프를 백악관에 보낸 연합인 “보수파, 자유주의파, 포퓰리스트, 경제적 민족주의파, 복음주의파들이 단합만 한다면 우린 앞으로 수십년 통치를 계속할 수 있다…우리는 풀뿌리 군대를 규합할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공화당 기득권층을 ‘영구적 정치계급’으로 몰아치며 “5조 달러의 부를 창조하는 나라의 국민 절반이 400달러의 비상금도 갖지 못했고 고교 졸업 근로자들의 소득이 1970년대 이후 상승되지 않고 있다…이 문제 해결을 위한 ‘경제적 민족주의’ 실현은 인종·피부 빛깔·성별·종교·민족·성적 취향에 관한 것이 아니다. 책임 및 의무를 지는 한편 경제적 기회의 우선권도 누려야 할 ‘당신은 미국 시민인가’의 문제다”라고 외치는 그의 연설에 공화당 청중들은 열광했다.

트럼프 공개 반대의 ‘용기’를 보인 공화의원들은 내년 선거에 재선출마를 안하거나 은퇴를 선언한 사람들이다. 플레이크와 코커도 재선 가능성이 높았다면 출마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교적 안전했던 코커의 입지는 트럼프와의 반목이후 부쩍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처음부터 트럼프와 불화로 배넌의 살생부 맨 위쪽에 올라있던 플레이크는 배넌이 공개 지지하는 도전자에게 여론조사에서 20포인트나 뒤져 참패가 예상되고 있었다.

그래서 플레이크의 전격 불출마 선언은 공화당 의원들에게 등골 서늘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트럼프 반대는 정치적 사망선고를 부를 것”이라는 보복성 경고다. 앨라배마 상원 경선에서 도전자 로이 무어의 승리가 기득권층 패배의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는 두려움이 공화당 내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무슨 의미인가. 제2의 티파티 물결이 몰려오고 있다는 뜻이다.

반대자를 응징하려는 트럼프에게 배넌이 최강의 무기인 것은 확실해 보이는데 배넌의 전쟁에 트럼프가 얼마나 개입해 있는지는 미지수다. 기득권층과의 관계개선 노력을 보이면서도 배넌과의 긴밀한 유대를 계속하는, 아직은 양다리 상태이지만 세제개혁법안 통과 여부, 중간선거 전개 양상에 따라 본심이 드러날 것이다. 만약 12월12일 공화당의 텃밭인 앨라배마 보궐선거 본선에서 배넌의 극단파 후보가 민주당에게 패배한다면, 그래서 공화당 의석 하나가 날아가 버린다면, 배넌의 승세는 약화될 것이고 승자를 사랑하는 트럼프의 관심도 식어질 것이다.

공화당 숙청작업을 통해 ‘트럼프의 당’으로 바꾸려는 배넌의 전쟁이 일단은 승리를 거두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배넌은 거의 80년 전 당내 반대파 의원들을 축출하려했던 민주당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와는 달리 성공할 수 있을까. 1938년 루즈벨트의 민주당 보수파 숙청 시도는 실패했고 결국 민주당의 내홍은 다음 선거에서 공화당의 압승을 가져왔다.

배넌 전쟁의 궁극적 목적은 트럼피즘의 입법화다. 공화당 상원의원 숫자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입법화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요즘 배넌은 기득권층을 향해 묻고 있다. “정책 입법화를 못한다면 다수당이 무슨 소용이냐?” 배넌의 전쟁이 공화당 후보를 줄줄이 낙선시킨다면 기득권층이 물을 것이다. “다수당 의석을 못 늘린다면 제2의 티파티가 무슨 소용이냐?”

<한국일보 박 록 주필>

<그늘집>
gunulzip@gmail.com
미국:(213)387-4800
한국:(050)4510-1004
카톡: imin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