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달러면 미국 시민권…아깝지 않아”

산후조리원마다 원정출산족들, 상류층 전유물서 중산층 확산
병역보다는 교육 걱정이 더 커, 한국 입국은 미국 여권으로

원정출산은 더 이상 유행이 아니다. 그렇다고 원정출산 열기가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원정출산이 상류층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원정출산은 ‘사려 깊은’(?) 한국 부모라면 태어날 자녀를 위해 해야 하는 당연한 일처럼 그 모습이 달라져있다. 한때 원정출산을 상류층의 ‘모럴 해저드’라고 비난하던 목소리도 이제는 잦아들었고, 이들에게 향하던 손가락질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원정출산이 점점 더 중산층으로까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12시간의 비행을 감행해 거액의 비용까지 감수하며 미국에서 자녀를 출산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정출산을 감행하는 임산부들을 통해 원정출산의 실태와 이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자식에게 선택할 기회”

출산 4주를 앞두고 미국에 온 만삭의 임산부 K씨와 남편 C씨를 만난 것은 지난 9월말 한인타운의 한 커피숍. 이들 부부가 LA공항으로 입국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들은 이미 5년전 첫째 아들을 LA에서 출산한 경험이 있어 여유마저 느껴졌다.

5년 전 원정출산으로 첫째가 미국 시민권자가 됐는데 둘째만 빼놓을 수가 없어 둘째를 임신했을 때부터 원정출산을 계획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출산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가족들 도움받기가 어려워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미국에서 출산하기로 했다” 부인 K씨의 말이다.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첫째는 시민권이 있는데 둘째를 빼서는 안될 것 같아 다시 원정출산을 하기로 했다”며 “무엇보다도 원정출산을 하려는 이유는 자식들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고 싶어서다.

당장은 이중국적자가 되겠지만 성인이 돼서 미국인으로 살아가든, 한국인으로 살아가든 자식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남편 C씨는 더 적극적이었다. “원정출산을 한다고 주위에서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없어요. 부러워하죠. 여유가 된다면, 아니 좀 무리를 해서라도 자식에게 미국 시민권을 줄 수있다면 그렇게 해주고 싶은 것이 대부분 부모들 생각 아닐까요?”

■“병역보다 교육 문제가 더 커”

임산부 K씨와 남편 C씨에게서는 오히려 당당함이 느껴졌다. 원정출산으로 미국 시민권자가 되더라도 더 이상 병역을 기피하기가 어려워져 오히려 원정출산 부모들이 더 떳떳해졌다는 것이 남편 C씨의 말이다. “한국 법이 개정되서 이제 미국에서 태어나도 군대를 면제 받기 어려워졌잖아요? 병역을 기피하려고 원정출산을 한다는 비난은 받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부부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헬조선’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C씨는 “명문대 진학도 어렵고, 번듯한 직장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된 지 오래다. 헬조선이라고들 하지 않나. 우리 아이는 좀 다른 삶을 살도록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군대 문제 보다는 미 시민권을 받게 되면 아이가 자라서 한국에서 지옥 같은 입시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고, 미 시민권자로서 미국 대학에 자유롭게 진학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원정출산 대열 중산층까지

원정출산이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시절, 원정출산은 시민권을 취득해 자녀의 병역을 면제해주고자 하는 목적이 컸다.

하지만, 관련 한국법규가 개정되면서 원정출산 시민권자는 병역을 면제받기가 어려워졌다.

미국에서 출생해 선천적으로 복수 국적이 된 남자라도 부모와 당사자가 미국에서 체류하지 않는다면 국적이탈이 허용되지 않아 병역의무를 피할 수 없다.

특히, 국적이탈 심사 과정에서 출입국 기록과 부모의 한국 체류여부를 면밀히 조사하기 때문에 원정출산 시민권자가 국적이탈로 병역을 피하기는 어렵게 됐다. 더 이상 군대면제가 원정출산의 주된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자녀에게 미국 시민권을 선물해 교육이나 취업 등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마음이다.

■산후조리까지 최소 2만달러

임산부 K씨와 남편 C씨 부부가 이번 둘째 출산을 위해 계획한 예산은 2만 달러. 5년 전 첫째 출산 때보다는 많이 줄었다. 남편 C씨는 “5년 전에는 LA사정을 잘 몰라 출산 전부터 산후조리원에 들어가 비용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대한 경비를 줄이려고 아내와 몇 달 전부터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한인타운 버질과 5가 인근의 한 산후조리원을 통해 산부인과와 출산할 병원을 모두 예약했고, 출산 후 3주간 산후조리원에서 몸을 풀 계획이지만 출산 전까지는 한인타운 하숙집에 머물고 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원정출산은 임산부들이 받는 서비스나 체류기간, 산후조리원에 따라 비용차이가 크다. 적게는 2만달러, 많게는 약 5만 달러까지 지출해야 한다.

한 산후조리원측이 공개한 출산비용 자료에 따르면, 원정출산 임산부는 메디컬 적용을 받을 수 없어 유도자연분만을 하는 경우 무통주사비용 1,000달러를 합쳐 약 1만달러가 소요된다.

또,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몸을 푸는 경우, 2주일 기준 4,000∽6,000달러가 들어간다. 여기에다 항공비용과 출산 전 체류비용까지를 합치면 2만 달러를 훌쩍 넘기게 된다.

■“출산비용, 자녀미래 투자”

첫째 때는 3만달러가 훨씬 넘는 경비를 들였고, 이번에도 최소한 2만달러를 지출하게 되지만 C씨 부부는 이 비용이 그리 아깝지 않다.

대부분의 원정출산 임산부들 역시 마찬가지다. 수만달러의 거금을 들여 미국에서 출산하지만, 출산과 동시에 자녀가 미국 시민권자가 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독수리가 문양이 새겨진 미국 여권을 자녀 손에 쥐어 줄 수 있어서다.

임산부 K씨는 “우리 부부가 부자는 아니지만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좀 힘에 부쳐도 2만달러 정도는 감내할 생각”이라며 “취업비자를 못받아 취업도 못하고 돌아온 유학생도 주변에서 봤고, 100만달러를 들여 투자이민을 가는 부부도 봤다. 2만달러를 들여 자식에게 미국 여권을 미리 줄 수 있다면 오히려 효과적인 투자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남편 C씨는 “원정출산이 불법도 아니고, 그렇게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무원도, 교수들도 다들 원정출산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8주면 미국 여권 들고 귀국

한국 임산부들의 미국 원정출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산후조리원들이다.

브로커 역할을 하는 산후조리원이 산부인과 선택에서 병원 출산 스케줄, 여권취득까지 길잡이 역할을 하고, 출산하는 병원에서는 소셜워커를 통해 출생신고를 도맡는다.

보통 4주가 소요되는 출생신고서도 원정줄산 임산부들은 ‘러시 오더’를 통해 단기간에 받을 수 있고, 200달러를 추가로 내는 ‘급행신청’으로 대체로 출산 후 4주 정도면 독수리가 새겨진 미국 여권을 받게 된다. 원정출산 임산부들이 대체로 출산 4주전에 입국하고 있어, 8주 정도면 미국 여권을 자녀 손에 쥐어줄 수 있는 셈이다.

또, 소셜시큐리티번호(SSN)는 대체로 출생 후 8주만에 우편으로 받게 되지만, 산후조리원들이 임산부의 주소지를 대신해주고 있어 임산부들은 산후조리원을 통해 한국에서 자녀의 소셜시큐리티 카드를 받는다.

■H·G·W 병원, 한국 산모들 몰려

산부인과와 출산할 병원도 산후조리원을 통해 소개받는다. K씨 부부가 예약한 산후조리원은 임산부 K씨 부부에게 한인 산부인과 전문의로 김모 닥터와 박모 닥터를 권했다. 출산할 대형 병원으로는 한인타운 인근의 H 병원, G 병원, W 병원 등을 소개받았다. K씨 부부의 선택은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 닥터, 그리고 H 병원이었다.

■“교육보험 대신 원정출산”

연방 질병통제국(CDC)에 따르면, 한해 미국에서 시민권 취득을 목적으로 ‘원정출산’하는 외국인 산모는 2015년 기준 약 3만 6,000여명에 달하며, 이들 중 대다수가 중국인 산모들이다.

중국인 다음으로 원정출산 많은 국가는 한국인이다. 국적에 따른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최근 한국 정부측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에서 원정출산을 한 한국인 산모는 2만 8,809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 해 평균 2,881명이 원정출산을 하고 있는 셈이다. 0세 영아의 입국 통계를 근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원정출산이 유행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됐던 2005년에 원정출산이 한해 1,654명이었던 것에 비추어 보편 최근 원정출산은 한 해 5,000명이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K씨 부부는 “원정출산을 하려는 신혼부부를 여럿 만난 적 있다. 교육보험을 드는 것보다 원정출산을 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원정출산을 하려는 한국 산모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김상목 기자>

매년 3만6천여명의 원정출산 임산부들이 미국에서 자녀를 낳고있다. 원정출산 임산부는 8주 정도면 자녀의 미국 여권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여권을 받은 중국계 신생아 모습. [출처:sina.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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