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악몽으로 끝난 ‘아메리칸 드림’

샌안토니오 경찰관들이 문제의 트레일러를 조사하고 있다. 화씨 100도의 폭염 속에서 내부 온도가 170도까지 치솟는 고온으로 탈수증과 심장 발작 등으로 최소 10명이 숨졌다. AP

“트레일러 속 90명, 작은 구멍에 번갈아 가며 호흡”
150마일 죽음의 여정, 내부 온도 화씨 170도까지 치솟는 찜통 트럭안에서 10명 처참히 사망

“에어컨 고장나고 환기구도 막혀…오븐처럼 달아올라
차벽 두드리며 ‘살려달라’했지만 두시간 넘도록 방치”
운전자 “車 세우고 보니 사람들 고기처럼 포개져 있어”
트럼프 정부 불법 이민자 단속 강화 시점서 발생 논란

바퀴 18개짜리 대형 트레일러 안은 화씨 10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으로 출발 전부터 후끈거렸다. 90명 이상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지만 칠흑같이 어두워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 트레일러가 ‘아메리칸 드림’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트레일러 안은 오븐처럼 달아올랐고 폭포처럼 땀을 흘리는 사람들의 신음과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에어컨은 고장 났고 환기구 4개도 모두 막혀 사람들은 트레일러 벽 한쪽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으로 차례대로 돌아가며 겨우 숨을 쉬었다. 트레일러 벽을 두들겨대며 “물을 달라” “살려 달라” 울부짖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기진한 사람들은 하나둘씩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미국 텍사스주 국경도시 러레이도를 떠나 북쪽으로 150마일쯤 떨어진 샌안토니오로 향하는 두 시간 남짓의 ‘죽음의 여정’은 그들에게 아비규환 생지옥이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지난 23일 새벽 샌안토니오의 월마트 주차장에서 트레일러 문이 열렸을 때는 내부 온도가 무려 화씨 170도 이상까지 치솟는 고온으로 이미 8명이 숨져 있었고, 병원으로 옮긴 후 2명이 더 숨졌다. 20명 가까이가 심각한 탈수증과 심장 발작, 뇌 손상 등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24일 생존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이번 사건 피해자들이 멕시코, 과테말라 등지에서 걸어서 미국 국경을 넘거나 뗏목을 타고 밀입국한 후 22일 밤 러레이도로 모여들어 트레일러에 탔다”고 보도했다.

▶도착시 1인당 5500불 주기로

한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미국 국경을 넘기 위해 밀입국 알선 조직 등에 1인당 1만2500멕시코페소(약 703달러)를 지불했고, 샌안토니오에 무사히 도착하면 5500달러를 더 주기로 했다.

체포된 운전자 제임스 매슈 브래들리 주니어(60)는 텍사스의 한 지방법원에 출석해 “화장실에 가려고 차를 멈출 때까지 트레일러 안에 사람들이 타고있는 줄 몰랐다”고 했다. 이어 “트레일러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안을 들여다보니 스페인어 쓰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고기처럼 바닥에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다”고 했다.

그는 “트럭 회사가 있는 아이오와에서 트레일러의 새 주인이 있는 텍사스주 브라운스빌까지 가져다주는 길이었다”고 주장했다. CNN은 “검찰이 최고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인신매매 등의 혐의를 적용해 브래들리를 기소했다”고 보도했다.

▶’피난처 도시’향하다 참변

지난 2003년 5월 텍사스 남부에서 휴스턴으로 가던 트레일러에 탄 멕시코와 중남미 출신 밀입국자 100여 명 중 19명이 호흡곤란으로 숨진 적이 있다. 지난해 10월에도 멕시코 베라크루스주(州)에서 불법 이민자 55명을 싣고 미국 국경을 넘으려던 트럭에서 4명이 질식사하는 등 비슷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불법 이민자 단속을 강화하는 시점에 일어나 논란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멕시코 국경 통제를 강화하면서 지난해 말까지 3500달러 정도였던 밀입국 수수료가 올 들어 8000달러까지 치솟은 것으로 알려졌다. 밀입국자들이 수수료를 내지 못하거나 사기를 당하면 인신매매를 당할 수 있다.

샌안토니오는 멕시코 국경에서 가깝고 고속도로 3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여서 불법 이민자들과 밀입국 알선 조직이 집결하는 곳이다.

샌안토니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피난처 도시’중 하나로, 강력한 이민자 단속과 추방에 저항하며 연방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불법 이민자 신분을 문제 삼아 체포·구금하지 않는 곳이다. 최근 샌안토니오 지역의 밀입국 사건이 빈발하면서 연방정부는 단속 강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시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징벌적 반이민 정책이 결국 인신매매를 부추기게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코리아타운데일리뉴스>

밀입국자를 태운 트레일러가 발견된 샌안토니오의 월마트 주차장에 24일 희생자를 애도하는 시민들이 물과 꽃, 초 등을 가져다 놓았다.

<그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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