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사라진 들판… 농작물이 썩어 간다

이민 노동자 감소로 미 전역 농장들이 타격을 입고 있는 가운데 오리건주의 한 농장 앞에 노동자를 구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다.

일손 부족 남가주 농장마다 피해 눈덩이
트럼프 정부 전방위 불체자 단속에 수확기 필요한 노동력 절반 사라져

일손 부족으로 수확을 포기하는 농장주들이 갈수록 늘고 있어 중가주와 북가주 등 캘리포니아는 물론 미 전역의 광활할 농장지대들 마다 수확을 못해 버려지는 농산물들이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체류 이민자 단속작전이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농산물을 수확해야 할 대다수 이민 노동자들이 들판에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력이 없어 다 자란 농산물을 수확하지 못하고 들판에서 썩혀야 하는 미 농장주들의 마음이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심화되고 있는 농장노동자 부족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미 농업 생산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수확 못한 농산물이 급증하면서 채소, 과일, 유제품 등 농산품 가격 폭등도 우려되고 있을 정도로 농장 노동자 부족현상이 심각하다.

■농장주들 수확 노동자 구하기에 혈안

중가주에서 포도 농장을 운영하는 ‘스탁튼 빈야드’의 농장주 제프 클라인(35)은 지난해 상당수의 포도나무를 갈아엎고 이미 포도 농사를 거의 포기했다. 일손을 구하기 힘들어서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체자 추방은 우리 노동력을 죽이고 있다. 농사를 지을 만한 충분한 노동력을 구하기 어렵고, 이 지역 농장주들은 다른 농장 인력들을 빼내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한탄했다.

딸기, 브로컬리. 양배추 등 채소 농장이 많은 샌타 바바라 카운티의 경우, 지난해 일손 부족으로 수확을 못해 버려진 농산물 피해만 1,300만달러에 달했다. 올해는 피해 규모가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년전 수확을 못한 농산물 피해액이 400여만 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이미 3배 이상 피해 규모가 커진 셈이다.

새크라멘토에서 남쪽으로 약 240마일 떨어진 툴레어 카운티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 농장주들은 농장 마다 일손을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세워뒀지만 일손 부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포도, 우유, 오렌지, 아몬드 등 십 여개의 농산물을 재배하는 샌호아킨 밸리 지역도 심각한 일손 부족으로 인해 수확하지 못하는 농산물들이 늘면서 연간 350억달러 규모의 이 지역 농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민 단속으로 타격

미 농장들이 이처럼 심각한 일손 부족현상을 겪고 있는 것은 농산물 수확에 필요한 농업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불법체류 이민노동자들이 들판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 전역에서 불체자 추방 단속이 전방위적으로 전개되면서 수확 인력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이민 노동자들이 급격히 줄고 있어, 일손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캘리포니아의 농장 노동자 80여만명 중 절반 이상이 불법체류 이민노동자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미 전국적으로는 농산물 수확에 필요한 필수 노동력 220만명 중 절반 이상이 불법체류 이민자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산.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 대상이 되고 있는 최소 110여만명의 불법체류 이민자들이 미 전국의 농장에서 일자리를 채워줘야만 평년 수준의 농작물 수확이 가능하다는 계산인 셈이다.

■수확 못한 농작물 피해 눈덩이

농장들의 수확이 어렵기는 조지아주도 마찬가지. 지난 2011년 심각한 가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했던 이 지역 농장주들은 네이던 딜 주지사가 불체노동자 고용금지 주법(HB 87)을 시행해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은데 이어 이번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불체자 단속으로 농업 인력 난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조지아 농산물재배자협회(GFVGA) 찰스 홀 사무국장은 “평년 같으면 플로리다에서 겨울 토마토 수확을 마친 이민노동자들이 대거 조지아로 이동해 양파나 벨페퍼, 블루베리 등을 수확해야 하지만 올해는 이들이 조지아로 오지 않고 있다”며 “농작물들이 들판에서 썩어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조지아대학에 따르면, 현재 조지아 농장들은 피크타임 농업노동자의 85%를 차지하는 약 1만 1,000여명의 노동력이 부족한 상태로 올 봄에만 수확을 못한 피해 규모만 7,500만달러 상당에 달하며, 올 한해 피해규모가 1억달러를 훨씬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지지했던 농장주들 탄식만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단속으로 미 농장주들은 심각한 일손 부족난을 호소하고 있지만 이들 농장주들은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보수성향의 공화당원들이 대다수이다.

특히, 트럼프 지지자가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캘리포니아에서 컨, 툴레어, 킹스 카운티 등 대표적인 농업 지역의 미 농장주들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트럼프를 지지했던 샌호아킨밸리 지역의 한 농장주는 “물 공급을 늘려준다는 트럼프의 공약을 믿고 그에게 투표했는데 이제는 트럼프의 이민단속이 우리 발목을 잡고 있다”고 탄식했다. 이 농장주는 “트럼프 행정부가 설마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농장에 ICE 수사관이 한 사람이라도 나타난다면 겨우 붙들고 있는 노동자들마저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미국 노동자는 하루도 못 버텨”

또 다른 농장주는 “트럼프 이민단속으로 불체노동자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미국인 일자리는 결코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왔던 한 미국인 청년은 첫 날 점심을 먹고 사라졌다”고 말했다.

간혹 용감한 미국인들이 구인광고를 보고 농장에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게 있지만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농장을 떠나는 것이 현실.

허리가 부러질 듯 강도 높은 농장 노동을 기피하는 이민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도 인력난을 심화시킨다. 불체 신분이라 해도 젊은이들은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12시간 넘게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는 농장 노동보다 도시의 식당이나 마켓에서 일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렇다고 농장 노동자들이 도시의 불체 노동자들 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 것도 아니다. 이미 대부분의 농장들이 최저 임금 이상 임금을 지불해 풀타임 노동자들은 불체자라도 연간 3만달러 가까운 수입을 얻는다. 하지만, 노동자 구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농산물 가격 폭등도 우려

미 농장들의 일손 부족 현상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미 대부분의 농업지역들에서 나타나고 있어 앞으로 앞으로 미 농업 생산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존스 홉킨스 대학 미래 센터는 한 보고서에서 200만 농장 노동자의 태반이 불법 이민자라는 사실을 도외시한 채 트럼프 행정부가 단속 위주 정책을 밀어 부치게 되면 식탁에서 과일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 농장주 단체 ’미 농장연맹‘(American Farm Bureau Federation 이하 AFBF)도 지난 1월 한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정책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게 되면 미 농업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며 600억달러 상당의 생산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채소와 과일 등 눙산품 300억~600억달러 상당의 생산이 줄게 될 수 있고, 이는 곧바로 농산물 가격 폭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AFBF의 분석이다.

AFBF는 이 보고서에서 야채와 과일 등 신선식품 가격이 치솟아 일부 품목은 수십 퍼센트 이상 폭등해 전체 소비자 밥상 물가는 3~5%까지 오르게 된다고 경고했다.

특히, 불체노동자 의존도가 절대적인 젖소 농장들의 피해가 가장 심각해 우유 생산 감소로 커 우유값은 90%까지 폭등할 수도 있다고 AFBF는 지적했다.

<한국일보 김종하 기자>

베이커스필드 인근 지역의 한 농장에서 이민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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