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탄핵? 눈치보는 공화당, 몸사리는 민주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여전이 각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법무부가 트럼프 선거캠프의 ‘러시안 커넥션’에 대해 특별검사를 임명한 지난 17일(현지시간) 이후엔 사뭇 다른 뉴스의 주인공이 됐다.

이전까지는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전격 해임과 러시안 커넥션에 대한 수사중단 압력 등 미국내 사안이었다면, 이후엔 취임 뒤 첫 해외순방에 나선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이 뉴스에 오르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를 시작으로 중동과 유럽 5개국을 순방하고 있는 트럼프는 오랜만에 정상(頂上) 외교 일선의 정상(正常)적인 대통령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언론의 관심을 돌리는 데 해외순방 만큼 유용한 것도 없다. 트럼프 탄핵을 지지하는 미국 주류언론은 이를 리처드 닉슨에 비유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래이첼 브론슨은 지난 19일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휩싸였던 닉슨 역시 1974년 6월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스라엘 순방에 나섰지만 귀국한 지 1달만에 사임했음을 강조하면서 “트럼프가 중동평화를 가져오는 데 성공하기를 빈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특검 임명 이후 미국에서는 별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마이크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사임을 전후해서부터 끊이지 않던 러시안 스캔들 관련 뉴스가 잦아들었다. 공화·민주당 주류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상시국임에도 현안에 집중하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폴 라이언 미국 하원의장(공화)이 지난 17일 워싱턴의 공화당 전국위( RNC)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해임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모을 것”이라면서 즉답을 피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초당파(Bipartisan)정치’의 부재

일부 민주당 의원들과 극소수의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에 대한 특검정국을 워터게이트에 비유하고 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애리조나)은 코미 국장 전격 해임과 러시아측 정보누설을 두고 “상황이 워터게이트 크기와 규모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백악관에서 민주, 공화당 출신 대통령 4명을 보좌한 데이비드 거겐(Gergen)은 “우리는 이제 탄핵의 영토에 들어섰다”고도 했다. 하지만 닉슨의 경우와는 비유할 수없는 대목이 한두개가 아니다. 무엇보다 연방의사당의 풍경이 다르다.

닉슨 행정부에서 야당인 민주당은 상·하원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소환권력(Subpoena Power)‘를 누리고 있었다. 상, 하원 어느 상임위원회에서건 마음껏 독자적인 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더 큰 차이는 당시만해도 연방의회 내 양당 또는 초당(Bipartisan) 정치가 작동하고 있었다.

FBI가 민주당사 무단침입이 닉슨의 재선과 관련됐다는 연계고리를 발견한 1973년 상원이 77대0으로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 구성을 결의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탄핵에 필요한 상원 과반수(67명)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다수였다. 상원 내 민주·공화당은 한쪽이 일방적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50석 안팎을 주고받는 것을 감안하면 민주·공화당이 의기투합했다고 봐야 한다.

닉슨 탄핵정국의 주요무대는 특별검사가 아니었다. 전국에 생중계된 의회 청문회가 여론을 끌어모으는 자장의 중심이었다. 작금의 미국 의회에서는 민주, 공화 양당 모두 당파적 이해관계에 코를 받고 있다. 초당정치는 사라졌다. 특히 공화당 의원들은 잔인무도할 정도로 당파주의에 매몰돼 있다는 것이 뉴욕타임스가 지난 20일자 사설에서 진단한 현주소다.

하원의장을 지낸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19일 워싱턴 의사당의 의원실에서 AP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펠로시는 “탄핵론에 불길을 당기지 않는다”면서 선을 그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문제는 민주주의가 아니야. 공화당이야”

특별검사 임명을 전후해 공화당의 당론은 “두고 보자(wait and see)”는 말로 요약된다. 이달말 메모리얼데이 뒤 일단 상원 정보위원회에 코미 전 국장을 불러 말을 들어보자는 것 외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임명된 17일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을 신뢰하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그렇다(I do)”라고 단언한 바 있다.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 역시 “백악관으로부터 드라마가 더 안나왔으면 좋겠다”면서도 “러시아의 대선개입에 관해서는 상원 정보위에서 추가정보를 확보할 것”이라는 말로 언론의 예봉을 비켜갔다.

코미 해임 뒤 290명의 공화당 상·하 의원들(하원 238명·상원 52명) 가운데 대략 40명의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그중 6명 만이 독립적인 조사를 촉구했고, 1명 만이 특별검사의 임명을 요구했다. 원외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조지 HW 부시 행정부의 법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바와 빌 클린턴 탄핵정국 당시 특별검사였던 케네스 스타도 ’러시안 스캔들‘과 관련해 특검을 임명할 필요는 없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예 오바마케어와 감세안, 규제완화 등의 현안에 집중하는 것이 탄핵정국을 빠져나오는 지름길이라고 훈수하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공화당은 이제 전통적인 서구 정당다운 정체성을 잃고 있다. 그 대신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발견 할 수있는 바, 한 남자와 그 가족의 자존심(ego)과 욕구 및 이해관계를 지지하는 정견을 보여주고 있다”고 통탄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는 “공화당원들은 청각장애자와 언어장애인에 더해 시각장애인 역할을 하거나 더 심한 경우 치어리더처럼 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주류언론이 뭐라고 하던 정파주의에 매몰된 공화당은 제길을 간다. 가디언은 “언론을 통해 정보를 끌어모으는 한편, 백악관으로부터 지령(answers)을 기다리는 것이 공화당의 뉴노멀(새 표준)”이 됐다고 꼬집었다.

■몸사리는 민주당, “머나먼 탄핵보다 가까운 보궐선거부터”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럼프 탄핵을 주장하는 10명 안팎의 의원들과 달리 당 지도부는 아직 나서지 않고 있다. 대선 패배 이후 주류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정점으로 하는 당내 진보파와의 갈등을 채 봉합하지 못한 상태이다. 트럼프가 민주당을 바쁘게 한 측면도 있다. 오바마케어(the Affordable Care Act) 폐지와 대규모 감세안, 금융규제 완화 등의 현안을 뒤쫓기에도 바쁘다는 이유에서다.

자칫 탄핵문제를 전면에 내세울 경우 올 하반기 특별(보궐)선거에서 재기의 발판 조차 마련키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제프 세션스의 법무장관 취임으로 공석이 된 앨라바마 상원의원 1석과 사임 또는 주정부·연방정부 공직 취임 등의 이유로 하원의원 6석 및 뉴저지·버지니아 주지사를 뽑는다. 내년 11월 중간선거의 전초전 양상을 띨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 호재이지만 지난해 그를 당선시킨 핵심지지층(Shy Trump)이 건재하는 한 탄핵담론을 먼저 꺼내는 것이 자칫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 밑바닥 민심은 여전히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담론 보다 일상의 현안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위기에 몰렸던 1998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범한 실수이기도 하다. 당시 공화당은 중간선거를 클린턴에 대한 국민투표로 만들려고 했지만 대통령의 개인 문제이지 민주당의 잘못이 아니라고 판단, 민주당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결국 특별검사의 수사를 지켜보는 한편으로 보궐선거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상원 정보위는 이달말쯤 코미 청문회를 할 예정이다. 상·하원 정보위에서 코미 전 국장의 메모 및 트럼프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간의 대화록 등을 입수하려고 하지만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민주당 전국위(DNC)의 고위급 인사는 지난 20일 CNN에 “우리는 지금 탄핵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면서 “현재로선 탄핵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같은 날 “나는 탄핵론에 불길을 당기지 않는다”면서 선을 그었다.

■더욱 중요해진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진실규명 작업

민주당이 그다지 탄핵에 그다지 열정을 쏟지 않는 또다른 이유는 트럼프가 탄핵될 경우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이어받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 리버럴들은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인 펜스가 백악관 주인이 될 경우 되레 공화당이 급진적인 보수 아젠다들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것을 우려하고 있다.

DNC 관계자는 “트럼프는 이데올로그가 아니지만, 펜스는 그렇다. 많은 점에서 오히려 트럼프가 낫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도 러시안 스캔들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대통령과 부통령이 동시 탄핵당한다면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성채인 연방의회가 적극 나서지 않는 한 진실규명은 늦어진다. 결국 트럼프의 위헌여부 및 실정법 위반을 밝혀내는 지난한 작업은 온전히 특별검사 뮬러의 어깨위에 올려진 셈이다.

<경향신문 김진호 선임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지난주 해임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지명자 시절인 2013년 6월21일 로버트 뮬러 당시 국장과 함께 백악관 로즈가든을 걷고 있다. 뮬로는 미국 법무부가 지난 17일 트럼프 선거캠프의 러시아안 커넥션을 조사할 특별검사로 임명됐다. EPA연합뉴스

<그늘집>
gunulzip@gmail.com
미국:(213)387-4800
한국:(050)4510-1004
카톡:imin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