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믿을 것인가, 트럼프? 코미?

코미 해임이 ‘트럼프의 워터게이트’가 될지는 솔직히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가 리처드 닉슨 못지않게 부정직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을 전격 해임한데 따른 후폭풍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매일 더 성능을 높여가는 폭탄이 하나씩 터지고 있어 백악관이, 워싱턴이 혼란과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백악관 참모들이 하나를 간신히 진화시키면 대통령의 돌출행동이 더 큰 불을 질러놓는 모양새다.

대통령 측근의 러시아 내통 의혹을 수사 중인 코미 해임의 정당성 논란이 불거지자 백악관은 대통령이 법무차관의 건의를 수용해 해임했다고 ‘합리적 명분’을 만들어 내세우면서 합법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자신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코미 해임은 자신이 당선된 때부터였다며 딴 소리를 했고 작성 당사자인 법무차관도 자의적인 건의가 아니라고 반발했다. 그 후 러시아에 기밀정보 유출, 러시아 관련 수사 중단 요구 등 잇따른 폭로보도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았다.

백악관의 지지부진 대응에 코미 해임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 행위가 거론되며 탄핵론 제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하원 본회의장에서 공개 탄핵촉구를 하는 민주당 의원들만이 아니라 공화당 일부 의원들에게서도 탄핵이 언급되기 시작했으며, 닉슨과 빌 클린턴이 탄핵위기에 몰렸을 때 백악관 참모였던 데이빗 거건도 이번사태가 “탄핵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탄핵론은 트럼프가 사임한 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의 러시아 내통설 수사를 언급하면서 코미에게 “당신이 이 사건을 놔 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는 코미의 메모 내용이 16일 뉴욕타임스에 보도되면서 다시 불붙고 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메모에 담긴 것은 대통령의 명백한 위법행위일까, 아니면 또 하나의 정치적 스캔들일까. 일부 보수진영에선 벌써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거론되는 귓속말이 오간다는데, 이번 코미의 역습이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을 끝낼 것인가…

그러나 탄핵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상당수다. 메모 내용이 사실이라 해도 대통령을 탄핵하거나 법정에 세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폴리티코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결론짓고 있다. 대통령이 ‘부패하게’ FBI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방해·저지하려고 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또 두 사람만이 있는 방 안에서의 대화 내용이 녹음테이프가 아닌 코미의 메모에 담긴 것이어서 탄핵의 증거가 될 만큼 강력하지는 못하다고 CNN의 법정 해설가 폴 캘린도 지적한다.

트럼프의 운명은 탄핵 결정권을 가진 의회에 달려 있다. 의회 전체분위기는 트럼프 비판으로 들끓는 듯 보이지만 지도부는 차분하고 조용하다. 민주당조차도 지도부에선 ‘탄핵’ 언급은 삼가고 있으며, 주도권을 쥔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 대통령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서 코미의 의회 증언과 메모 등 관련자료 제출 후 사실관계 확인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한 정도다.

공화당 지도부는 왜 트럼프를 버리지 않을까. 뉴욕타임스가 몇 가지 이유를 분석 보도했다. 우선 트럼프 자신과 러시아의 내통 증거가 없어서이고, 러시아 스캔들이 아직 수사 중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멀리 보면 2018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지지표밭을 의식해서이고, 이민과 헬스케어, 세제개혁 등 트럼프와 협조해 실현시켜야 할 보수 어젠다가 많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번 국경장벽 건설기금 유보 등 트럼프의 양보를 받아 내 임시예산안을 통과시킨 후 공화당 지도부에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막무가내 독선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밀당하는 타협으로 균형과 견제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대선후보 시절 온갖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당선되었듯이 이번에도 트럼프는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의 통치 현실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무엇보다 ‘산산 조각난’ 신뢰도 때문이다.

‘신뢰’는 정치가의 가장 귀중한 자산으로 꼽히는 데도 트럼프는 “진실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이고 그렇게 행동한다.

퀴니피액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정직하지 않다”는 응답은 61%에 달했다. 그가 정치에 무지하고 경험 없어 미숙하다는 사실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무지와 미숙함에 겸손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지적도 높다.

이 위기의 시대에 초보대통령이라는 것도 불안한데 배우려 조차 하지 않는 독선에 찬 대통령을 믿고 따르기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여론의 지지를 높일 수 있고 여론의 지지는 대통령의 영향력과 직결된다. 대통령 개인의 지지가 높아야, 인기는 없지만 꼭 필요한 정책을 시행할 수도 있고 의회의 존중도 받아 성공적 통치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어제 법무부는 민주당의 요구대로 러시아 스캔들에 대해 특검수사를 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당장 트럼프는 메모를 둘러싼 코미와의 적나라한 진실공방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트럼프에겐 어떤 면에선 첫 신뢰도 테스트가 될 수 있다.

CNN은 이렇게 묻고 있다 : “트럼프 대 코미 : 미국은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트럼프를 믿을 것인가, 코미를 믿을 것인가 – 이 선택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는 여러분과 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하다.

<한국일보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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