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케어와 상원의 양심

지난주 연방하원이 통과시킨 ‘트럼프케어’의 의미는, 만약 이 공화당 건강보험개혁안이 입법화될 경우의 가장 대표적인 승자와 패자를 가려보면 한 눈에 드러난다. 수천억 달러의 감세혜택을 누릴 부자들에겐 예상 밖의 희소식이지만, 수천억 달러의 정부보조가 삭감되면서 무보험자로 전락하게 될 서민들에겐 끔찍한 재난을 뜻한다.

한 나라의 정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책임하고 너무 잔인하다.

공화당 내 반란으로 지난 3월 한 차례 무산된 후 입법 ‘승리’에 집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에 밀려 급하게 고쳐서, 무리하게 되살려낸 트럼프케어의 하원 통과는 허술한 입법 절차와 비 비인도적 내용으로 거센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케어 – 형편없는 법안’이라는 제목의 USA투데이 사설은 “하원 공화당의 이번 표결은 앞으로 수 세대에 걸쳐 입법 방식의 나쁜 선례로 연구대상이 될 것”이라고 혹평했다.

수백만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미 경제의 거대한 한 부분을 재구성하는 주요 현안인데도 불과 3시간의 논의 끝에 전격 통과시킨 것이다. 법안의 시행 결과를 예측하는 의회예산국(CBO)의 평가보고서를 기다리지도 않았고, 초당적 노력은커녕 단 한 번의 청문회도 열지 않았다.

공화당이 필사적으로 폐지하려는 오바마케어도 결점이 많아 이상적인 건강보험법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최소한 건강보험 가입자의 권리 보호를 기본전제로 한다. 그중에서도 여론의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조항의 하나가 기존병력 가입자에 대한 차별 금지다. 트럼프케어는 각 주정부에게 기존병력 환자 보호조항에 대한 삭제여부 결정권을 허용하고 있다.

65세 이하 미국 성인의 약 절반이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기존 병력을 갖고 있으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직장보험이 없는 경우 오바마케어 이전에는 보험가입을 거부당했었다. 폭등하는 보험료 때문에 파산하는 경우도, 보험이 끊겨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중국계 의사 리애나 웬은 만성적 발작증세에 시달렸던 한 젊은 변호사를 기억한다. 점점 치솟던 보험료가 월 8,000달러에 달하자 어린 자녀의 아버지였던 그는 치료를 포기했다. 무보험자로 버티던 어느 날 발작을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 온 그는 코마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사망했다. 트럼프케어가 시행된다면 기존병력 가입자에 대한 보험료가 폭등하면서 이런 안타까운 죽음이 또 발생할 것이라고 웬 의사는 우려했다.

인기 없는 오바마케어를 대체하려는 트럼프케어가 오히려 오바마케어의 인기를 높이고 있다. 카이저재단 조사에 의하면 오바마케어를 유지하면서 개선하라는 응답자가 48%로 폐지·대체하라는 41%를 훌쩍 넘어섰다. 곤두박질치는 트럼프케어 지지도는 다수의 조사에서 반대가 최고 61%까지 치솟았고 지지가 최저 17%까지 주저앉았다.

이번 주 휴회를 맞아 귀향한 하원의원들도 지역구 타운홀 미팅에서 유권자들의 항의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당신들에겐 정치게임이지만 내겐 생사의 문제다” “나이 들고 병들면 보험에서도 차별당하는 2류 시민이냐” “선천적 지병이 있는 내 아들을 이대로 죽게 할 셈이냐”…

대통령과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백악관에서 자축파티까지 열며 희희낙락했지만 막상 유권자들의 분노와 마주한 공화당 의원들은 명쾌한 대답을 못 주고 있다. 하긴 어느 정치가가 부유층 혜택주고 서민들 내치는 정책을 당당하게 옹호할 수 있겠는가.

이제 공은 상원으로 넘겨졌다. 지금까지 하원의 시끌시끌한 헬스케어 논쟁을 느긋이 관전하던 상원의 손에 트럼프케어의 운명이 쥐어진 것이다. 공화당 상원의원 누구도 반기지 않는 듯하다. 공화당의 숙원과제인 ‘오바마케어 폐지’에 장애가 되기를 원치 않지만 한눈에도 문제투성이인 트럼프케어의 입법화 주역이 되고 싶지도 않아서 일 것이다. 하원안에 대한 거센 후폭풍을 감지한 상원은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연구하여 새로운 헬스케어안을 작성하겠다고 다짐했다.

가난하고 늙고 병든 사람들에겐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트럼프케어의 입법화가 가능할까. 물론이다. 거의 죽어가던 법안을 살려낸 트럼프케어의 모멘텀과 새 대통령의 파워는 결코 과소평가될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같은 다수당이라도 압도적 주도권을 쥔 하원에 비해 상원의 공화당 우위는 52대 48로 다소 불안하다. 민주당이 결사반대하는 트럼프케어 표결에서 필리버스터를 막을 60표 지지확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공화당 지도부는 단순과반수로 통과시킬 수 있는 예산조정법안의 절차로 처리할 것이다. ‘예산조정안’으로 처리되려면 향후 10년간 적자를 늘리지 않는 내용이라야 한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중요한 선택에 직면했다. 수천억 달러의 세금을 깎아줄 것인가. 수백 수천만 명의 보험을 유지시킬 것인가. 두 가지를 다 택할 수는 없다. 적자가 폭등할 것이다.

결정은 재정보조 삭감을 반대하는 소수의 중도파 공화당 상원의원들에 달려있다. 3명만 반대표를 던지면 트럼프케어는 무산된다. 그들의 반대로 트럼프케어의 내용이 바뀔 수도 있다.

하원은 가난하고 병든 서민들의 재정보조를 삭감하면서 부자들의 감세를 택했다. 그렇게 벼랑가로 내몰린 사람들에겐 하원과는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상원의 ‘양심’만이 현재로선 유일한 희망이다.

<한국일보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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