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멕시코 장벽

대통령 후보들은 선거에 나오면서 수많은 공약을 내건다. 그러나 그 중 그 후보를 특징짓는 공약은 대체로 하나다. 로널드 레이건은 “힘을 통한 평화”를 외쳤고 당선된 후 대대적인 군비 증강을 감행했다. 소련은 이에 맞서려다 경제를 파탄내고 결국 나라까지 망했다.

아버지 부시는 “내 입술을 읽어라. 증세는 없다”를 핵심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를 깨는 바람에 재선에 실패하고 공화당 내에서도 외면받는 존재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하면 떠오르는 것은 “크고 아름다운 장벽”이다. 그가 유세장에서 멕시코와의 전국경에 걸쳐 장벽을 세우고 그 비용을 멕시코에 물리겠다고 할 때마다 지지자들은 흥분했다.

그러나 지난 주 공화 민주 양당 합의로 마련된 예산안에는 이 장벽 건설에 필요한 예산이 빠져 있다. 빠져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정부 예산을 전용해 어떤 형태로든 장벽을 건설하는 것을 명문으로 금지해 놓고 있다. 한 때 정부 폐쇄도 불사할 것 같았던 트럼프는 고작 “언젠가”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멕시코한테 이 돈을 받아내겠다는 트위터를 날리는 것이 반응의 전부였다.

물론 멕시코가 돈을 낼 가능성은 제로다. 여기 동의하는 대통령이나 정부는 그 날로 실각하고 이와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미국으로 이민가지 않는 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이렇게 힘없이 꼬리를 내린 것은 이 장벽을 건설하는데 재정적, 법적, 정치적 장애물이 어마어마 하기 때문이다. 우선 2,000마일에 달하는 멕시코 국경 대부분은 사막이나 산속을 지난다. 여기까지 가는 길을 내는데만도 수십억 달러가 들고 장벽 건설에는 수백억 달러가 들 전망이다. 수조 달러의 감세안과 인프라 건설 비용 충당하기도 바쁜 의회가 이런 돈을 마련해 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민주당 내에서 일치단결해 이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멕시코와의 국경 지대를 지역구로 갖고 있는 공화당 의원과 재정 적자 증가를 원하지 않는 공화당 의원들 모두 장벽 건설 예산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거기다 국경 지역 토지의 상당수는 개인 땅이다. 정부가 여기다 장벽을 지으려면 수용령을 발동해 이들 토지를 접수해야 하는데 수용령 발동은 공화당의 기본 이념에 어긋난다.

또 텍사스 내 62마일 국경 지대는 토노호 오담 인디언 보호 구역이다. 이 인디언들은 국경 양쪽에 살며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이 보호구역 부회장인 버론 호세는 “누가 당신 집에 찾아와 집 안방에 벽을 세우겠다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이를 강행하려면 인디언 보호구역법을 새로 제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더라도 법정 투쟁을 포함한 결사 항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환경 보호론자들은 장벽 건설이 사막과 산악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먼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조사에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보나마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소송 사태가 벌어질 것이 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민의 60%가 멕시코 장벽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원래 세우기로 했던 일부 지역에 조금만 만든 후 공약을 실천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없다.

장벽이 없는 현재도 밀입국자 수준은 수십년래 최저고 자발적으로 돌아가는 사람까지 합치면 멕시코 인들의 밀입국은 제로 수준이다. 그런데도 막대한 돈을 들여 장벽을 세우겠다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트럼프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었던 멕시코 장벽은 세워지기도 전에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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