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불체자의 선택 ‘도 아니면 모’

“미국서 불안 속에 살든지, 한국으로 돌아가든지…”

“밤잠 못자고 사느니 20년 미국 생활 포기하렵니다”
“불체 대학생 아들 한국으로 보낼까 고민 중입니다”

변호비용 너무 비싸 전문가 도움 구하기도 쉽지않아
혼자 해결하기엔 역부족, 해결책 안보여 가슴앓이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서류미비자(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을 강화하는 가운데 새로운 ‘반 이민 행정명령’이 예고되면서 한인 불법체류자의 삶은 언제 추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의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23만명 한인 불체자들의 선택은 그야말로 ‘도 아니면 모’다.

#한인타운 내에 거주하는 김수국(가명·60대)씨는 미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불법체류자로 20년으로 살아 온 미국 생활이 아깝다는 회한이 김씨에게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그는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 이민국 단속요원들에게 체포되는 꿈을 자주 꾸기 때문이다.

김씨는 차라리 이렇게 살 바에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택시 운전과 식당 허드렛일, 건설 현장 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해 온 삶이지만 언젠가 합법적인 신분으로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그의 버팀목이었다. 허나 그는 이제 지쳤다.

김씨에겐 노모가 있다. 그 동안 미국을 떠나지 못한 이유가 노모에게 차마 두고 떠난다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이제 떠나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가까운 친척이 있어 노모를 맡길 생각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김씨는 더 이상 못 살 것 같다고 말했다.#벤추라에 거주하는 이순실(가명·50대)씨는 UC 산타바바라에 재학 중인 아들을 둔 엄마다. 관광비자로 미국에 들어 와 속칭 ‘눌러 앉은’ 경우다. 아들은 자격이 되지 않아 불법체류 청소년 유예프로그램(DACA)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요즘 이씨는 아들과 언쟁을 벌이고 있다. 식당서 보조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들을 이씨가 가지 못하게 붙잡는 과정에서 실랑이를 벌인다. 이씨는 불법체류자인 아들이 혹시 이민국단속반에 체포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단속 요원이 급습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씨의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이씨는 아들을 다시 한국으로 돌려 보내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김씨와 이씨의 사례는 최근 LA 민족학교 ‘이민자 핫라인’에 걸려 온 사연들이다. 21일 존 켈리 장관이 서명한 2건의 반 이민 행정명령 지침서(memo)가 발표되고 난 후 한인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LA 민족학교 정상혁 핫라인 코디네이터는 “지난 주 하루 평균 20 여 통의 문의 전화를 받았다”면서 “두 사람의 사례는 그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특히 사소한 경범죄 전력이 있는 경우에는 불체자 뿐 아니라 영주권자들도 상당수가 문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핫라인에 걸려 온 사례들에 대해 실제적인 도움과 보호 조치를 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현실이다. 불법체류 문제는 법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상혁 코디네이터는 “핫라인은 그야말로 체포 직전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주목적”이라며 “체포나 추방 여부와 관련된 문제는 법적인 것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불체자들은 그들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야 한다. 즉 혼자라는 것이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나 기타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 불체자들은 신분상 고임금 직종에서 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들에게 법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렇다고 교회 등과 같은 종교 기관도 불체자를 도우려는 손길을 선뜻 내놓기 어렵다. 자칫 법적인 문제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체자 관련 설명회 장소로 교회의 협조를 구할 때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 한 한인단체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인 불체자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좁다. “여기 미국에 남든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든지.” 둘 중의 하나다. 하지만 둘 다 그들에겐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스포츠서울 남상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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